요즘 들어 배구가 너무 재미있다며 틈틈이 배구 중계를 보는 친구 신부님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야구만 좋아했고, 야구만 보며 자라서 그런지 세상의 모든 운동경기는 야구로 통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다른 운동 경기는 잘 보지도 않을뿐더러 배구는 경기 규칙도 잘 몰라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 ‘강스파이크’, 이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언젠가 친구 신부님을 만날 일이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신부님은 느닷없이 ‘내 삶은 토스, 정말 토스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토스’ 그게 뭐지?
내 표정을 보던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 전 배구경기를 보는데 신기하게도 그 경기를 통해 내 삶을 묵상하게 되더라. 상대방이 서브할 때 늘 가운데에서 공을 잘 받아 올려주는 토스, 그 토스를 잘해 주는 역할. 어쩌면 그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사실 예전에 배구를 볼 때는 배구 네트 양옆에 키가 큰 사람들이 뒤에서 뛰어올라 높이 떠 공을 힘있게 내리쳐 공격 점수를 올리는 것만 보였거든. 그들이 때로는 맨 뒤에서 몸을 날리듯 스파이크 서브를 넣어 점수를 올릴 때면 탄성의 박수가 절로 나왔지. 그러다가 간혹 스파이크를 날리는 사람 앞에 더 높이 뛰어올라 그 공격을 막는 모습을 보면 저게 배구의 맛이라 생각했어. 어떤 때는 라인 밖으로 나가는 공을 다시 살려내는 모습에 배구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경기라는 생각마저 들었지.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상대방 공을 받아 토스해 올리는 사람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그런데 며칠 전 배구경기를 보면서 다른 선수들이 멋있게 높이 뛰거나 날렵하게 몸을 날리고 그럴 때, 언제나 가운데 서서 침착하게 공을 잘 받아 올려주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다른 동료들이 멋있게 공격을 하고 훌륭하게 제 몫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안정감 있게 그 동료의 키 높이에 맞춰,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 속도까지 조절해 주면서 차분히 토스를 올려주는 그 선수의 역할을 보면서 ‘그래, 맞다. 바로 저 삶이 내 삶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본당 신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충분히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신자들의 마음과 영혼이 하느님에게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토스해주는 역할, 그게 바로 내 삶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그래서 요즘 배구를 볼 때마다 내 인생을 돌아보기도 해.”
나 원 참, 무슨 배구경기를 보다가 삶을 묵상하느냐며 웃음 아닌 웃음을 지었는데 며칠 후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배구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양옆에서 키 크고 힘 있고 잘 생긴 사람들이 퍼붓는 멋진 공격보다 언제나 그들을 위해 공을 잘 올려주는 선수를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선수가 실은 경기를 지혜롭게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기를 보다가 문득, 내 친구 신부님처럼 주변의 많은 신자들을 하느님에게로 힘차게, 멋있게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게 건강한 중심을 잡고 영혼들을 잘 올려주는 지혜로운 사목자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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