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후 성직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신학은 현대에는 많은 평신도가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평신도는 드물다. 그중에서도 교의신학을 전공한 평신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 교의신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최현순(데레사) 박사를 만났다.
최근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현순 박사의 전공은 교의신학. 하느님이 확실히 계시하셨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으로 교회가 공인한 신앙교리를 공부하는 이 학문은 모든 신학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다. 특히 논리적으로 신학의 기본 개념을 깊게 생각하고 정의해야 하는 이 학문을 공부하는 평신도는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도 그 수가 적다.
“평신도인데 왜 신학을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평신도에게 신학은 정말로 필요한 학문입니다. 삶 안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살아가는 평신도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 박사는 평신도는 성직자나 수도자의 말을 전달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말하듯 평신도와 교도권이 상호 협력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의무’라고 말한다.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교도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발전하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평신도의 몫이라는 것이다. 최 박사는 세상 속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평신도야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신학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평신도로서 신학을 공부한 최 박사는 신학을 공부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평신도들을 많이 만났고 그중에는 20대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로’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꼭 필요하고 보기 드문 신학분야를 공부한 사람이라도 우리나라에는 불러주는 곳이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독일이나 스위스의 신학교 교수진에는 많은 평신도가 활동하고 있고 신학을 공부한 평신도가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신학이 성직자와 수도자의 몫, 혹은 일부 특수한 평신도가 공부하는 것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또 신학을 공부한 평신도가 활약할 수 있는 토양도 갖춰지지 않았다. 신학을 계속 공부해나가고 싶어도 신학으로 먹고살 길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최 박사가 해나가고 싶은 일도 바로 이 토양에 밑거름을 주는 작업이다.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위해서는 저변이 확대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신학을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신학만 갖춰진다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서양에서는 해내지 못한 큰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레고리오 대학교로 유학을 간 최 박사가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에서 배워온 신학이 모두 서양의 말로 된 학문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어려운 신학용어가 서양 사람들에겐 듣기만 해도 어느 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신학을 풀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 박사는 이 작업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최 박사는 이 작업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의 신학에 큰 발전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 자신이 그랬듯이 우리나라의 평신도들에게 잠재된 신학에 대한 열망을 믿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로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죠. 저 역시 그 답답함에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바로 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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