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1997년 교구장 주교님으로부터 가정사목을 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참으로 난감하였다. 장가도 가지 않은 신부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정사목의 대상은 어디까지이고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처음으로 가정사목을 시작해야 하는 나로서는 앞이 깜깜하였다. 주교회의 안에 가정사목위원회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행복한 가정운동의 본부로서 자연출산 조절법을 홍보하는 일만을 하고 있을 뿐, 가정에 관련하여 아무런 방향 정립도 없었고 가정사목의 매뉴얼과 어떤 지침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여러 서적들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한국적인 가정사목의 방향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주신 ‘가정공동체’라는 회칙에서 가정이 병들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적인 차원에서의 사목이 1순위이며 어렵고 힘든 가정을 돌보는 것이 그 다음 사목적인 방향임을 예시할 뿐이었다.
교구에서는 성 빈센트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나 혼인강좌’를 교구청으로 이관하여 교육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는 상태였고 누구에게도 자문을 구할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 가정사목이라면 결혼도 하지 않은 사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상담실을 열어 문제의 가정을 만나보면 그 예방책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지역교회법 제234조에서도 “사목자들은 실망과 좌절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인생 상담과 지도에 힘써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듯이 고통받는 가정을 돕기 위해 상담센터 ‘사랑의 둥지’를 만들었다. 많은 상담봉사자들을 교육시켰고 전화 상담과 면접 상담을 통해 가정에 대하여 간접적인 경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담을 하고 예방책을 고민해 보아도 독신으로 사는 신부가 가정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보다 많은 프로그램과 관심으로 가정을 돌보는 개신교의 ‘가정사역’을 살펴보면서 주교님께 “신부들 중에 가정사목 담당자는 결혼을 시키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직접적인 가정생활을 통해 가정사목을 펼쳐 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독신 사제로서 가정생활이 허락되지 않기에 여러 부부들의 도움을 받으며 혼인강좌, 부모교육, 부부교육, 성요셉 아버지학교, 상담실과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운영하면서 벌써 15년을 한국의 가정관을 연구하고 가정성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가정사목에 매달리고 있다.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처음 시작하던 때와는 달리 혼인교육을 받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걱정이 앞서게 되고 성요셉 아버지학교를 운영하면서는 내 자신이 진짜 아버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며, 시련과 갈등 속에 고민하는 부부들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곱고 아름다운 황혼빛으로 물들어 가는 노인들에게서 축복과 감사를 배우게 된다.
부부들에게도 인생을 알아가는 세월이 필요하듯, 신부에게도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면서 나와 같이 울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 세상에서 부부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수건이 되어줄 소명은 바로 사제들이며 가정을 지켜가는 것이 바로 성소를 지키고 키워가는 길임을 깨달아 더 많은 사제들이 가정지킴이로 나서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사제여! 당신은 가정을 지키는 수호자입니다.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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