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아들 3형제, 그리고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여동생까지 해서 모두가 여섯 식구다.
그림을 잘 그리는 큰형님과 글을 잘 쓰는 작은형님, 그리고 늦둥이로 태어나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한 막내 여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형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서 늘 우등상을 탔으며 큰형은 항상 큰 사생대회에 나가 최우수상, 금상 등 많은 상을 타면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우리 집안에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시골 동네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닌 유명한 큰형에 비해 큰상을 타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형도 글짓기 대회가 열리면 장려상, 가작 등 제법 상을 많이 타면서 남달리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 잘하고 재주가 많은 형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우등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
사촌 형제들도 함께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나만 유독 우등상과는 거리가 먼, 제일 공부를 못하는 놈으로 친척들 사이에 낙인이 찍혔다.
8년 동안은 그래도 막내로서 나름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그것마저도 늦둥이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 내가 아버지께 사랑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당에 잘 다니는 것이었고 이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신부님이오”라고 대답만 하면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사제였고 그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셨다.
첫영성체와 함께 복사를 시작하면서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사에 참례했고 성당에 행사가 있으면 학교에서 공부하다가도 성당으로 달려갈 정도로 학교보다는 성당이 내겐 더 가깝고 친숙한 곳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공부를 잘해서 우등상을 타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우리 부모님은 우등상보다는 개근상을 더 크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큰형을 시작으로 모든 자식이 12년 동안 개근(초등6년, 중3년, 고등3년)을 하는 것을 당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작은형과 나, 그리고 여동생도 모두가 12년 개근을 하였고 조카들도 영향을 받아 학교를 빼먹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업혀서라도 학교에 가야 했고 링거를 맞으면 할아버지께서 링거를 들고서라도 학교에 함께 가신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몸이 아프면 집에서 쉬게 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되는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석하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부모님의 그런 집념의 12년 개근이 오늘날 우리 자식들에게 세상을 성실하게 살게 하는 초석을 만들어 주신 것 같아 감사드린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거나 모임에 빠지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모임에 늦게 오거나 이유 없이 빠지거나 하면 그 사람을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성장 과정에 어떤 가치관을 심어 주는가가 그 인생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먹고살기 어렵고 힘든 시절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자녀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셨어도 학교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기본임을 가르쳐 주셨기에 오늘 이렇게 나를 사제로 살게 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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