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세대와 새로운 세대 사이의 싸움이 끝났지만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전개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여 거의 꺼져버린 잿더미에서 절대주의가 다시 부흥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복잡한 요소들이 밀접하게 서로 엉켜있는 혁명의 와중에서 곡식의 껍질, 진리로부터의 오류, 혁명이 지향하였던 지속적인 가치들로부터 우발적인 요소와 하찮은 것들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자유주의의 부정적인 영향을 쉽게 받고 타격을 받은 탓으로 이에 반대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왕정복고주의자들 가운데 많았던 비타협주의적인 경향이었다. 그리고 이에 반대되는 다른 한가지는 자유주의적인 경향이었다. 먼저 비타협주의적인 경향의 동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884년 스페인 신부가 발간한「자유주의는 죄악이다(El liberalismo es pe-cado)」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근대자유주의에 대한 비타협적인 가톨릭 신자들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처럼 보였다. 1880년대의 가톨릭 출판물들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를 경계하고 혹평하였다. 즉 자유는 헤아릴수 없는 많은 죄악의 길을 열어놓기 때문에 악마의 충실한 친구라든가 양심의 자유는 미친 짓이라든가 또는 출판의 자유는 죄악이라고까지 단죄하였다.
그러므로 악의 손이 뻗치지 못하고 침투할 수 없도록 그들과의 어떠한 접촉도 끊고 방어벽을 튼튼히 쌓아서 순진한 양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요소들이 위와같은 사고방식을 부추겼다. 무엇보다도 모든 시대에 발견될 수 있는 태도인 보수주의의 출현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적인 사상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많은 손해를 입은 나머지 혁명의 공포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또 이미 누리고 있었던 특권을 상실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온 여러가지 관습들과 가치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데 따른 심리적인 부담도 있었다.
그리고 이미 고전적인 교육에 의해 강화되고 선천적인 가치인 것처럼 인정되어온 권위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존중 정의와 같은 보다 중요한 가치들 위에 세워진 질서안에서 느끼는 안정감도「새로운 변화」를 우선 거부하고 보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계시 진리를 통하여 모든 문제들을 즉시 해결할 수 있다는 종교적인 확신과 1800년대 초부터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 갖가지 악이 옛 질서의 전복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것으로 제시되는 일체의 모든 것을 불신하고 꺼려하였다. 즉 정치에 있어서 새로운 것은 혁명이며, 철학에 있어서 새로운 이론은 오류이며 신학에 있어서 새로운 학설은 이단으로 경계되었다. 교권과 속권의 깊은 결속과 더불어 절대주의는 가장 훌륭한 정치제도인 것처럼 드러났고, 루이 14세 왕 시대가 교회를 위한 황금시대로까지 평가되기도 하였다. 비오 7세 교황(1800~1823)의 국무성 장관이었던 꼰살비(Ercole Consalvi, 1757~1824)의 서한이나 회고록에는 로마에 널리 유포된 이러한 사상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교회역사 안에 항상 잠재해 있는 선악의 흑백논리가 이 시대에도 유감없이 활개치기 시작하였다. 즉 아직 초자연적인 질서로 승화되지 않은 한, 순수하게 자연적인 구조위에만 세워진 사회와 마주칠때 나쁜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교회 반대자들이나 단순히 교회로부터 멀어진 자들의 제안들은 신앙과 관습에 반대되는 요소가 없을때에도 비호의적인 관점에서 경계하였다. 이는「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혁명의 와중에서 놀란 보수주의자들이 전통에서 벗어난 어떠한 변화도 우선 경계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비타협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인 제도의 결함과 잘못을 혹평하였고 자유주의 자들의 세속화 시도에 전력으로 반대하였다. 자유주의는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초자연적인 가치로 존중되어온 계시의 역할을 축소 부정하면서 인간 이성을 진리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고 무신론과 모든 종교들을 같은 차원에 두는 조직적인 무관심주의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경제로부터 도덕을 분리하고 신앙과 도덕을 기본적인 가치로 삼는 초월적인 모든 법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를 모든 법의 원천으로 삼았으며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눈에 띄게 축소하면서 개인의 양심문제에서 종교의 영향을 배제하려 하였다.
비타협주의자들은 혁명가와 자유주의자들을 동일시 하여 이들을 반그리스도교적인 위험인물로 간주하였다. 비타협주의자들은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종교적인 임무를 쉽게 하는 사회의 그리스도교적인 제도를 옹호하는데 염려하였다. 신앙을 수호하고 그 가치를 확산시키려는 그들의 열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방법이 과연 그리스도교 정신에 합당했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다양성 가운데 일치보다는 획일주의적인 일치를 더 선호하고, 사실 역사적으로 그르친 경우도 있었다.
대화는 자기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장과 입장을 잘 알고 합리화한 이상으로 상대방의 의견과 처지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비타협주의자들은 신앙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열성은 대한했지만 변화된 세상의 새로운 가치를 이해하려는데는 인색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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