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베트남, 우리 귀에 유별나게 익숙한 베트남의 옛 사이공 거리를 거닐다 보면 은밀히 다가와서 한국사람의 옷자락을 잡는 여인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깊은 호소력을 담고 있는 그 눈빛, 그녀는 비밀스럽게 간직해 온 남편사진과 한국주소가 적힌 낡은 편지봉투를 펴보인다
『나의 남편은 한국사람입니다. 혹시 이사람을 아시나요?…』
빛바랜 사진과 손때에 절은 주소쪽지 하나를 들고 무작정 거리에서 남편을 찾고있는 베트남여인. 미안한 마음으로「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하면 그녀는 곧 실성해버릴 것만 같은 실망과 좌절의 늪으로 빠져든다.
『우리 아버지 이름은 ○○○씬데, 고향은 ○○○구요, 고모 이름은 ○○○,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아버지에게 연락좀 해주실 수 있어요?…』
하며 나달나달해진 주소쪽지를 디밀며 아버지를 찾는 우리의 핏줄 라이따이한. 한국말은 서툴러도 자신의 한국아버지를 찾고있는 그들 모습은 영낙없이 우리를 빼닮았다.
우리에게는 망각이란 강물을 따라 저멀리 흘러가버린 월남전. 그러나 그때 한치의 앞도 안보이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지구촌의 남녀가 나누었던 사랑은 오늘날 베트남에「라이 따이한」이란 한-베트남 혼혈아를 태어나게 했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두 나라는 국교가 단절되어 그녀들은 그리운 자신의 남편이 자기들 곁에 올 수 없었다고 믿고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길이 트였으니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곁으로 남편이 달려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들, 그 누가 지금 그들 곁으로 되돌아 가고 있는가?
기다리다 지치고 한국의 남편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들의 사무친 그리움은 분노로 변할 것이고, 끝내는 한국과 한국사람을 저주하게 될까 두렵다. 그녀들은 온갖 핍박과 냉대속에서 적군의 자식「라이 따이한」을 끌어안고 키우며 꿋꿋이 절개를 지키고 있다. 행여 집자를 옮기면 찾아온 남편이 가족을 못 만나고 헤맬까 걱정되어 집자리도 바꾸지 않고 기다림으로 애태우는 세월을 아직도 그녀들은 살아가고 있다.
대신영화사가 만든「라이 따이한」극영화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모의 아가씨 수잔과 젊은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월남땅을 밟은 한국청년 창우가 한 아버지의 핏줄인 줄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가 흘러간 역사의 그물에 걸려 상처받는 슬픈사랑 이야기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자라버리고, 덮어놓고 싶어도 더이상 덮어놓을 수도 없는 역사속에 감추어 놓은 우리의 모습이 한-베트남 혼혈아「라이 따이한」이란 이름으로 그 실상의 얼굴을 쳐들고 우리의 양심앞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
「라이 따이한」이란 극영화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망각하고 있는 역사속의 우리의 모습을 다시보고, 우리의 핏줄 라이 따이한들이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고맙게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관심과 애정이 그들에게 모아졌으면 하는 마음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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