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는 북경에서 「세계 여성대회」가 열리는 해이다. 지난 75년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를 선포한 뒤 20년을 맞는 오늘, 산업화, 도시화 등으로 여성들의 삶의 형태은 많이 변화했지만 여성들 앞에 우뚝 선 인식의 벽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았다. 가사와 고된 노동의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빈민. 농촌 여성들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도시여성들도 여성이란 이유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안에서도 수많은 삶의 굴레를 써야 한다. 세계 여성의 해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여성의 지위, 역할, 삶의 질 향상 등의 문제를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살펴본다.
『여성의 삶이요? 정말 순탄치가 않아요. 그야말로 장애의 연속이죠. 왜 똑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면서 남성은 대접받고 여성들은 억압과 불평등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사일에 전념하면「무식한 여편네」로 무시당하고 직업을 가지면 가진대로 「모진에미」란 비난과 시련을 당해야 해요. 사회는 급속히 변화해 가는데 사람들이 만든 제도나 관습들은 왜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은 특별한 일이다.
무엇보다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여자이기 때문에」겪어야 하는 고용의 문제. 결혼과 일 그리고 육아의 심각한 고민과 가부장적 사회분위기, 향락문화가 맞물려 점차 도를 더해가는 성폭력과 성의 상품화의 위기까지도 안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뿌리깊게 박힌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뿐 아니라 억압되고 불평등한 여성의 특별한 삶을 자식에게 넘겨주기 싫어서 아들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내년 봄 둘째아이를 낳게 될 박숙현(32ㆍ율리안나)씨는『첫 아이가 아들이어서 태어날 아이는 딸이어도 괜찮지만 아들이라도 좋겠다』고 말한다. 『아들키우기가 더 쉬운 세상 아니냐』면서.
지난 7월 보사부가 국회에 제출한「결혼 적령인구 성비변화자료」에 따르면 95년 결혼적령기 남성인구가 여성인구를1.3% 초과하는 것을 기점으로 해마다 남성인구가 증가해 5년후엔 6명중 1명의 남성이 신부감을 구하지 못할 전망이다.
특히 여자로 태어나기란 장녀보다 차녀, 그보다는 셋째 등 밑으로 내려 갈수록 어려워 장남과 장녀의 비율이 1백6.4대 1백인데 반해 차남과 차녀의 비율은 1백12.8대 1백이며 셋째 아이의 경우 1백95.7대 1백으로 남자가 여자출생의 2배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넷째아이는 무려 2백28.6대 1백이라는 놀라운 비율을 보인다. 또한 1가구 1자녀 추세가 확산되면서 첫 자녀가 남아일 경우 단산하는 가정이 늘어 1자녀 가정의 성비는 2백6명에 이른다.
정상적인 남녀 출생비율이 깨지고 불균형한 것은 바로 무분별한 태아의 성감별과 임신중절(낙태)를 통해 남아의 선택적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아선호 사상과 출산력」에 관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연씨의 연구조사에서 보면 서울에 거주하는 주부 2백89명 중 무려 52.5%가『남자아이를 낳기 위해서 임신중절을 경험한 바 있다』고 응답, 충격을 주고 있다.
여성의 출생이 인위적으로 조절됨으로써 여성의 생명은 이세상 그 어느것보다 평등한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박탈당하고 있고 남아의 선택임신을 위해 가해지는 낙태시술의 폐해는 모두 여성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치열한 경쟁률과 확률을 뚫고 간신히(?) 태어난 여성들은 그 이후에도 결코 순조로운 삶의 항해를 하지 못한다.
그나마 교육열이 세계어느나라 보다 높아 교육의 기회가 남녀에게 균등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이러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발판으로 능력을 키우고 또 사회 전반에 폭넓게 진출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학교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여성들이 경험하는 것은 분명 아직도 사회에 두텁게 자리한 성차별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다.
모그룹 비서실에 근무하다 몇달전 퇴직한 이서희씨(25)는『대학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당당히 입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내가 하는 일은 커피심부름과 타이핑, 상사의 전화연결이나 스케줄 조정이 전부였고 중요한 기획회의 주재는 남자사원의 몫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여성이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능력뿐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갖춰야 하는 세상이다.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반인 오영선양(19ㆍ가명)은『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아 취업걱정은 하지도 않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매번 면접에서 탈락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성학 관계자들은『여직원의 용모가 좋으면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는 등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식의 이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성을 상품화하는 사고방식에 잇닿아 있다』고 꼬집는다.
광고, 영화, 연극,비디오, TV드라마,잡지 등 대중매체들이 성의 상품화를 더욱 부추기고 거기다 물 밀 듯 밀려든 향략 퇴폐문화 등의 다양한 복합적 원인은 성폭력 세계3위라는 불명예를 안겨줬다. 나이고하를 말론하고 한국의 여성들은 늘 성폭력의 위험에 노심 초사하며 살아가는 지경이다.
『무엇보다 성폭력이 여성에게 가하는 피해는 가해자의 강압과 힘에 못이겨 신체적 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압적인 성구조와 가부장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켜야 할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자」「여자가 어떻게 했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는 비난 등 또한번의 정신적 폭력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이예요』성폭력 피해자 안모씨(25)의 이야기다.
폭력적인 군사문화와 억압적 성구조가부장적 사회분위기는 성폭력을 가정의 안방까지 끌어들임으로써 가정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자에게 있어「제2의 인생출발」이라는 결혼은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또하나의 선택과 시련을 강요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그리고 임신하고 출산이 이어 지면서 우리 회사 여직원들은 부당해고나 조기퇴직. 임시직으로의 전환강요 등 고용의 불안을 느껴요.
여성들은 첩첩산중의 벽을 깨지 못하고 회사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지요』
서울의 모 방송사에서 일하던 김정희씨의 고백이다.
교회안에서 한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양 모씨는『취직을 할 때 미혼여성이라는 단서가 붙은 곳이 교회에 더 많다.』면서『결혼한 여성들이 교회 곳곳에서 일하지만 탁아소같은 것을 운영하는 교회기관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퇴직하는 것으로 아는 사제나 수도자도 많다.』고 지적한다.
여성들은 가정과 일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부담함으로써 정신적、육체적 과로를 감수해 내야 하며 「남보다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욕심에 수퍼우먼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한다.
특히나 직장여성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육아」다.
기혼여성의 경우 72.2%가 취업중 자녀양육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통계도 있다. 아직까지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강해 여성들은 스스로 사회활동하는 것에 죄의식을 갖게 되고 또한 마땅히 자녀를 돌봐줄 곳이나 사람을 찾아 힘겹게 매달려야 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의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사회복지수준은 여성의 삶에 커다란 또하나의 장애물인 것이다.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41%가 직업을 갖고 있고 맞벌이 부부의 5세이하 자녀가 전국에 모두 1백77만4천여 명에 이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고작 13만여 명. 1백60여만 명의 자녀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여성의 의식이 급격히 진보되고 사회화된 반면 가정과 사회안에 버티고 잇는 가부장적 요소는 취업주부들 뿐만 아니라 가정주부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고 있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남편 직장에 출근시키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아요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도 전문직은 어렵고 임시직,단순직이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봉사활동에서 보람이나 찾자며 성당활동에 투신했지만 늘 설겆이 음식장만 물품판매 등 성당행사의 보조역할 뿐이지 기획이나 결정권은 주어지지 않았어요』최영순씨(43ㆍ소피아)는『여성의 위치는 집이나 성당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레지오, 성모회, 자모회 등 각종 단체에 아침일찍 출근부를 찍고 아이들 점심조차 챙겨주지 못하는 열성을 보이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사제나 남자들로 가득찬 사목회의 지시와 협조요청이다.
『교회안에서 여성들이 앞장서 무언가 일을 해보려고 하면 항시 따가운 시선이 뒤따라요. 뒷치닥거리나 하지 무슨 여자가 앞장서 설치냐고 뒷말이 많아요. 아이들보기도 그렇고 남편보기도 그렇고 조용히 보조역할이나 해야지 하면서 대부분 여성들이 나서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사목위원은 고사하고 여성단체의 장을 뽑는데도 어려움이 많은 걸요』
그래서 여성은 이래저래 보조자 인생에 대한 회의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갱년기 우울증에 까지 이르지만 자식이 결혼해 손주를 보게되면 이것도 끝장이예요. 다시 육아와의 전쟁이 시작되죠. 자아실현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육체적 피로와의 전쟁이 시작되죠. 자아실현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육체적 피로와 고단함에 하루가는 줄도 모르게 됩니다』신세대 할머니 하순영씨(58세)의 말이다.
여성은 남편의 아내요、 자녀들의 어머니이며、 아버지의 딸이다.
「여성의 존엄」에서 아버지의 위대함과 남편의 숭고함이 들어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도 여성의 역할을 무시해온 경향이 있어요. 한 인간을 낳고 키우며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일、 또한 가정이라는 일터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일、 한 인간으로서 자아실현을 위해 일터에서 땀흘리는 일. 이러한 여성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여성부터가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고 남성들도 함께 공유하고 인정해 줄때 여성의 삶은 변화하지 않을까요?』
여성들이야 말로 특별한 삶이 아닌 남성과 똑같은「평범의 삶」을 진심으로 원하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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