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은 우리나라가 해방된지 꼭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기쁨도 잠시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분단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적대하면서 살아온 50년, 동강난 허리를 잇고 조각난 마음을 하나로 묶는 통일의 길은 이제 더이상 피해갈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과북이 하나가 되기위해 통일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광복5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통일에 대한 소망은 더 간절합니다. 5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하나의 동족이 분단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그 골이 깊어지고 있다면 이것은 인류와 역사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것이 통일의 길이다고 확실하게 제시해 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하면 통일이 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제 자신은 너무나 막막합니다.
남북한간 불신의 골은 이번 북한의 핵문제를 처리하는데서 두두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미회담으로 북한 핵문제는 고비를 넘겼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면서 남북관계를 더욱 어렵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은 의도적으로 남한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종교교류나 경제교류 면에서도 남쪽정부는 제쳐놓기가 일쑤입니다.
북한에 교회원조 필요
최근에 북한을 다녀온 어떤 분을 통해 북쪽 주민들이 실제로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북한 동포들에게 남한 정부가 아무런 조건 명분없이 도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가 보냈다고 말하지 않고 쌀을 보내면 처음에는 몰라도 나중에는 남쪽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따라서 동포애가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남북관계에서 시급한 것은 상호간의 신뢰회복입니다. 이를 위해 남쪽이 명분같은 것을 찾지말고 순수하게 계속 노력하면 어느날 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정치상황이 불분명해서 뚜렷한 전망을 할 수 없지만 조금 기다리면 어떤길을 가면 좋은지 알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심정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구체 적으로 그 길을 알고싶은 마음입니다.
- 분단의 고통중에서 이산가족 문제야말로 인도적인 측면에서 볼때 이제 더 이상 미룰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이산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50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광복50주년의 분기점에서 우리 교회가 맡아야할 몫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정부차원에서의 통일노력이 어렵다보니 교회의 통일에 대한적극적 역할도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 노력이야말로 하느님의 도움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동구권의 변화도 기도의 힘에서 나온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죄많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또 보여주신 그 사랑을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그 삶이 사회로 파급돼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낳고 나아가 남북한 문제를 푸는 근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힘들고 막연해 보이지만 교회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일을 추진토록 제안받고 있고 연변과 제3국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그 방안을 찾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습니다. 얼마전 평양의 장충성상을 방문하고온 어떤분을 통해 장충성당 신자들의 공소예절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전해 받으면서 그들이 저의 북한방문을 고대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따라서 올해는 가능하면 북한을 방문할수 있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교회는 종교적인것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필수적인 경제적 지원을 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 그 일을 위해 함께 적극 모색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 지난 한해는 엄청난 재해들이 우리나라를 휩쓸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같은 인재들이 되풀이되지 않기위해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변화를 해야하는지요.
작년재해는 부정직탓
▲지난해의 사건 사고들은 관련된 사람들의 책임인 동시에 우리 사회전체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즉 우리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알려주는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고들은 우리 가치관 속에 기본적인 것, 즉 진실이 빠져있는데 기인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정직이 결여되고 사람보다는 돈에 가치를 두는 가치관의 부재가 낳은 결과입니다. 우리는 정말 왜 그같은 사태가 일어났는지 반성해야만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했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나 자신부터 진실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겸허하게 반성해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진실하지 못함을 반성할때 이 문제는 개선되리라 봅니다. 특히 우리는 광복50주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야할 출발점에서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처지로는 세계화 국제화에 나설수 없습니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우수성,「진실한 인간성」을 찾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다시 태어나야하고 진실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 새해는「관용의 해」이자「여성의해」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관용의 해는 분쟁과 반목이 그치지 않는 세계적 상황으로볼때 시의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특별히 제정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관용의 해를 우리끼리만이 아니고 사회와 더불어 지내기 위해 우리 교회가 맡아야할 몫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현재 세계는 유고내전, 체첸사태, 르완다 난민문제 등으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종교, 민족, 인종등의 차이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사랑으로 받아들이려는 관용의 정신이 부족한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용의 해를 설정한 유엔의 선택은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진자와 못 가진자, 지역 계층 세대간에 서로를 받아주는 관용의 정신이 결여,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같습니다. 지존파 사건의 경우 그 범인들에 대한 사형집행이 곧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또한 관용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끔찍한 살인 등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들이 인간다운 정신, 인간다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즉 인간으로 죽을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이지「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아울러 가톨릭을 포함, 개신교 등 모든 크리스찬들이 관용을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관용은 믿는이의 의무
관용은 참된 믿음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 믿음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죄많은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으로 오시어 죽으신 하느님은「관용의 표상」입니다. 따라서 관용은 하느님의 사랑 자비 믿는 것이고 그 관용을 사는 것은 믿는이의 최대 의무입니다.
- 여성의 해 20주년이 되는 을해년을 맞아 우리나라 여성들은 물론 교회여성들도 할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한국교회안에서 여성의 자리나 위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여성들은 생각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우리 교회 여성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교회현실을 볼때 비율상 여성신자들이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구역반장 등 실질적이 활동면에서도 여성들의 봉사는 우리 교회를 받치는 힘, 기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여성 신자들은 신앙을 전수하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교황께서도 95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여성들을 신앙을 전수하는 교육자, 교사들이라고 지칭하셨습니다. 또 그리스도안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인들의 차이가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 차별이 없이 여성의 지위가 존중되어야합니다. 그런면에서 본당 사목협의회 등에서도 여성들의 위치가 중요시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남녀 평등의 개념을 획일적, 형식적 논리로만 보아서는 곤란합니다. 「남자는 머리고 여자는 심장」이라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역할에 대해 충실, 남녀간의 인격을 참된 조화와 평등이 이루어지도록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장은 신선한 피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고 사랑입니다. 교회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데 여성은 특별히 그러한 카리스마를 더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여성들이 모성을 통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듯이 여성의 천성적 카리스마를 살때우리는 21세기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질수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성직자들도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들이 보다 인정받고 존중되는 가운데 교회는 그 역할에 감사하고 활동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 지난 한해 우리 교회는 생명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펴왔습니다. 이른바 낙태법 허용과 관련 형법 제135조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막기위해 담당주교님께서는 주교복장으로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셨습니다. 낙태를 방지하는 것을 중심으로 우리교회가 펼치고 있는 생명운동은 사회속으로 파급되기에는 호소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경시 풍조가 우리안에 얼마나 심각하게 퍼져있는지 인식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해 1백50만 명에 달하는 낙태가 인명경시 풍조를 일으켰고 나아가 엄청난 사고들을 유발 시킬만큼 일상생활화 되어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들어 자동차 폭주 같은 것도 남을 위하는 생명존중 정신이 부족한데 기이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생명에 대한 아무런 가치관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가치관은 생명에 대한 가치관입니다.
생명 가치관을 어떻게 얻느냐에 따라 인류가 이 길을 가느냐 저 길을 가느냐 그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인식을 우리모두가 가져야만 합니다. 신명기 30장 19절에 보면「너희 후손이 잘살게 되려면 생명을 택하라」는 말씀이있는데 이 말씀이 바로 이 시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생명존중을 위해 우리는 예언자적입장에 있어야 합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 1995년은 케이블TV시대가 전개됩니다. 종교방송들도 출범하고 30여개가 넘는 케이블TV가 다채널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사용될때 방송매체의 엄청난 위력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수 있지만 방송의 역기능 문제는 간과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매체시대 매스미디어의 역기능을 어떻게 헤처나갈수가 있을까요.
유선방송 역기능 우려
▲케이블TV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금문제 등 어려운 일이 산재해 있는 실정입니다. 신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적인 도움을 받을수 있을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업이라면 어려움이 있어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한대로 매체들의 역기능 문제는 많은 염려를 가지게 합니다. 인간과 사회에 윤리도덕적인 것을 주기보다는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하는 프로그램들과의 맛대결로는 경쟁이 힘들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한편 이런 희망을 가져봅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결국 사람들이 오락적이고 타락적인 것에서 오는 마음의 공허를 메우기위해 어두움을 밝혀주는 생명의 말씀을 찾게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가톨릭 채널이 살아있고 힘이있는 말씀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연구하고 전할때 그래도 마음을 밝혀주고 평화를 주는 것이 교회 방송에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고 다른 채널들이 자극을 받게되어 그것이 변화의 요인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 바쁘신가운데서도 우리독자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으로 새해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십시요.
▲새해는 돼지해입니다. 돼지꿈을 꾸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들께서도 돼지해에 돼지꿈 꾸시고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고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진실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도록 다짐하자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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