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가지는 까닭
한국천주교회는 민족과 더불어 해방 이후 50년의 역사과정을 걸어왔다. 이 50년동안 한국교회는 세계의 현대 교회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장족의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교회는 내적으로 민족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그 발전에 걸맞는 책임의 수행을 민족과 인류로부터 요청받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우리는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되었고, 당시 우리 민족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국제환경과 냉전체제에 휩쓸린 남북한의 분열지향 세력들은 이 기회를 선용하지 못했고 우리는 민족 분단과 극심한 재치의 길로 치달았다.
해방 이후 50년이 경과된 이후 지금에 이르러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새로운 기회에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사항은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여 민족 내부에 화해와 재일치를 확보하는 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는 오늘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민족문제일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인간의 보편적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민족의 분단은 한반도에서 인간의 보편적 구원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화해와 재일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현대 교회에서 명하는 자신의 고유한 사명을 실천하는 일종의 당위적 행동인 것이다.
한편 종교사회학의 연구결과들을 참조할 때 우리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민족주의에 대한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태도가 교회의 성장 여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즉 현대 사회를 살펴 볼때 민족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는 민족 내부에서 재인식되고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고,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히 당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교회의 노력은 민족의 보편적 구원을 위한 현실적이요 구체적 방법이기도 하다. 민족통일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당위와 현실이라는 두 측면에 있어서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에 관한 교회의 관심과 기여는 현재와 미래의 교회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교회의 기본 입장
그러나 한국교회는 해방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위한 공식적 입장의 표명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교회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모아서 교회의 교도권 행사에 있어서 책임 있는 분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제시된 통일에 대한 가르침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내일의 교회와 민족을 위해서 통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좀더 분명히 정리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 노력의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기본입장들이 참고될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첫째로 교회는 신도와 민족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통일을 생각해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은 제일차적으로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개된다. 그러나 교회는 신도들 뿐만 아니라 민족구성원 모두에게도 「어머니와 교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에서도 신도들과 민족 구성원 모두를 위해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을 좀더 선명히 표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는 민족복음화와 관련되는 구체적 문제들을 신학적 사목적 차원에서 검토 적용해 갈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로 교회는 민족 통일을 위한 과정에서부터 구체적이고 적극적 참여가 필요함을 확인해야 한다. 이는 그 누구도 통일과정에의 참여 없이 통일된 사회에서의 발언권을 행사할수는 없을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한국교회는 민족해방의 과정에 대한 적극적 기여없이 해방의 기쁨에만 동참하고자 했다. 그결과 해방공간에서의 한국교회는 민족 구성원 상당수로부터 소외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이로써 교회는 민족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데에 어려움을 겪을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되살려야 한다. 민족의 통일에 관한 문제는 민족의 광복 못지 않게 우리의 역사 전개에 있어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교회가 민족통일을 향한 과정에서 자기희생이나 참여를 주저하게 된다면、 미래의 교회는 통일이후의 사회에서 자기희생이나 참여를 주저하게 된다면, 미래의 교회는 통일이후의 사회에서 민족의 구원이나 복음화를 위해 기여할수 있는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통일을 위한 노력이 통일이후의 사회만을 대비하여 진행된다면 그것은 결코 온당한 방법으로 보기가 힘들 것이다.
화해와 재일치를 향해
오늘과 내일의 교회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또 검토할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회는 통일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는데에 기여해야 한다. 교회는 인간구원을 위한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전재로 하여 통일에 대한 성찰을 시도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선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는 통일이 민족의 미래를 위한 방법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통일은 남북한 모두가 서로를 변모시켜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좀더 합당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계기가 될수 있음을 밝혀주어야 한다. 통일은 정의와 평화가 존중되고 인권이 보장되며 민주가 신장될수 있는 효과적 방법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통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교회는 통일의 방법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민족공동체 모두에게와 그민족 구성원의 일부인 신도들에게 제시하면 좋을듯 하다. 그리하여 통일은 서로의 양보와 자기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이를 통해서 서로가 변모되어 새로운 하나가 되어야 함을 교회는 이야기할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일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일론 가운데 타방이 일방에게 흡수되거나 합류되는 흡수통일론 내지는 합류통일론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을 직시할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교회는 민족통일과 관련하여 민족구성원 모두가 낙관적 견해를 가질수 있도록 도움을 줄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는 통일 지향세력뿐만 아니라 통일회의론자들에게도 일깨움을 함께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통일은 가능한 것이며, 바람직한 것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오늘날 일부의 사람들은 통일의 후유증이나 통일비용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있다. 이들에게 교회는 분단체제가 가지고 있는 비그리스도교적 요소를 지적하고, 분단비용의 문제점도 생각할수 있는 균형감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자기희생과 결단
우리민족의 통일은 툴을 합쳐서 하나의 새로운 종합을 이루려는 작업이다. 이 종합은 지금 갈라져있는 둘이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희생을 감수하려는 자세를 가질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상대의 존엄성이 인정되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한을 서로가 치유해주려 노력할때에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는 이루어진다. 이와같은 노력이 상호간에 당장 전개되기가 어렵다면 우선 가능한 사람들만이라도 이러한 시도에 참여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기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와 신도들은 민족의 내일을 위해 자신이 감수해야할 자기 희생의 몫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는 해방 이전 북한지역에 적지않은 연고와 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다. 재산권문제는 통일 독일의 경우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통일 이후의 사회에 적지 아니한 문제점을 야기시켜주기도 한다. 사유재산권은 인간의 본성에 합치되는 당연한 것이지만 교회는 스스로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권에 대한 포기를 선언할수도 있을것이다. 이에 대한 교회구성원들의 동참도 이어서 이루어 진다면 통일은 「새로운 종합」이 될수 있음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뿐만아니라 교회는 자신의 가진 바를 북의 형제들과 조건없이 나눔으로서 자기희생의 길을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교회는 민족의 화해를 위한 평화의 교육을 자담할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 평화교육과 더불어 교회는 통일을 전망하면서 지역감정이나 투기심리의 극복을 신도들에게 우선 가르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의 극복없이는 하느님의 축복이어야할 민족의 통일이 악마의 재앙으로 변할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이땅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광복 50주년을 구약의 전통에 따라 희년으로 맞이하고자 하고있다. 우리교회도 이 50주년을 일종의 희년 내지는 성년으로 보아서 미래의 민족공동체를위한 자기희생과 봉사의 길을 찾아야한다. 이 노력을통해 오늘의 교회는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재일치에 이바지하며, 내일의 평화와 번영의 꿈을 이루어나갈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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