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기에 절대주의적인 권위에 대항하여 서민층에서 형성된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가톨릭교회내에서도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려는 소위 가톨릭 자유주의가 형성되었다. 자유주의는 모든 종파나 종교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무조건적인 종교적 중립성을 주장하면서 종교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며 종교를 국가의 통치체제에 예속시키려 하였고, 시민의 정치, 사회, 문화생활에 종교가 일체 간여하지 말라는 자유방임주의를 제창하였다.
비타협주의자들이 변화된 세상의 현대적인 이상에 대하여 과격한 반대의 입장을 고수할때, 가톨릭 자유주의자들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칙들을 수용하고 이에 따른 실천사항들을 진척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시민들의 계몽주의적인 권리회복, 1700년대와 1800년대 초의 문화ㆍ정치적 유산, 특권에 대항한 투쟁, 새로운 국가관, 그리고 권위에 대한 새로운 관계설정을 요구하는 얀센주의적인 동요 등 예기치 못한 기본적인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가톨릭 자유주의자들은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종교사회와 세속사회 사이의 관계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촉진하였고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제2차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던 교회자체의 어떤 요소들을 더 중요하게 부각하였다.
대부분의 입헌정치 체제의 나라에서 가톨릭 자유주의자들과 교회가 서로 싸웠다면 이것은 가톨릭 자유주의와 가톨릭 정신사이에 본질적인 불일치 때문이 아니었다. 이 싸움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들이 아직까지 새로운 정치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는 아직까지 절대주의에 충실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절대주의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퇴장했고 미래는 자유주의에 열려있는 상황에서 교회의 사명은 불변의 종교적 원칙과 여가정치적인 새로운 상황 사이를 조화시키는데 있었다. 사실 구체제하에서 교회의 조건이 꼭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사실 소위 「가톨릭국가」들의 모든 정책이 로마에 대한 불신과 증오 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로스미니(Rosmini)는 아직도 구체제 하에서 교회의 자유가 제한받아 세속 당국이 주교를 임명하고 교회 재산의 집행을 통제하느 것을 한탄하였다. 『모든 자유로운 사회는 본질적으로 조직의 자기 간부들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이권리는 교회에 본질적이고 양도할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공동체의 관리자 선택을 양도하는 것은 바로 자기자신을 넘겨주는것과 같다』「왕관」과 「제단」의 결속으로 인한 특권은 교회를 위해 유익하기보다 더 해로웠다. 이제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자유로운 국가에서 자유로운 교회일 뿐이다.
자유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는 국가로부터 개인의 양심이 온전히 존중되고 국가의 개입은 공공질서에만 제한되며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세속당국이 월권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 되었다. 교회의 자유는 일반적인 자유의 원칙만을 호소하였지 교회의 고유하고 특별한 사명을 위한것은 아니었다.
교회는 새로운 사회의 제현상들을 무조건 단죄하기보다는 함께 살고 일하는 그 사회의 경향을 받아들여 정화하고 승화시키는 태도를 항상 견지해왔다. 사실 새로운 방법으로 옛 가치들을 구현시키고 순수하지 않은 야망을 초자연적인 이상의 목표로 정화하고 정돈해야 하는 똑같은 문제들이 모든 시대에 서로 다른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예를들면 이러한 현상은 초세기에 희랍로마 문화와의 만남에서. 1200년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그리고 1400년대에는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자유주의 시대에서도 위와같은 예처럼 호교론자들, 저술가들, 철학자들이 종교를 거스린 비판들을 잠재우고 그리스도교적인 정신을 외면한 채 이루어지는 발전들을 그리스도교적인 정신으로 정화시키고 승화시키기 위하여 애섰다.
가톨릭 자유주의자들의 본질적인 공로는 교회와 현대세계가 서로 합의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모든 방법을 다하여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왕관과 제단이 지나치게 결속하는데 따르는 위험성과 이러한 구조를 종식시켜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 가톨릭 자유주의자들은 교회와 세속이라는 두 사회를 보다 명확하게 구별해야 하고, 국가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교회가 과감하게 정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몽딸랑베르(Montalem-bert)같은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고 자유롭고 양심적인 상태에서 개인이 발견한 진리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잘 파악하였고, 이러한 가치들을 이용하여 교회를 옹호하고 사회에 그리스도 정신을 함양하려고 힘썼다.
세속권력의 반그스도교적인 위험을 멀리 하고 신앙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하여 학교교육, 인쇄물, 기타 사도직활동을 통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그리스도교적인 양심이 형성되도록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평신도들의 활약이 컸다.
다른 한편 결함과 오류, 방종도 없지 않았지만 밀밭에서 가라지를 가려내고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내는 복음의 지혜로 「세례」를 주어 정화해야 하는 일이 우리의 몫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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