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민족의 분단과 통일 그리고 한국천주교회
➋현대 한국교회의 성장과 그 요인
③현대 한국교회의 성장과 지배 이데올로기
④현대 한국교회의 성장과 민족문화
광복후 50년을 되돌아 볼때에, 현대 한국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신자의 수적 성장이라고 보아도 전연 무리가 없다. 그리고 한편으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선교이고 복음화이며 다른 편으로 선교와 복음화의 일부 목표는 신자의 증가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괄목할 성장은 교회안에서 반가운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질적 성장을 중요시하는 이들도 양적 성장을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국내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는 신자수가 상당히 감소했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제3세계의 여러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한국교회의 성장은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종교자유가 없는 중국이나 북한을 차치하고, 같은 문화권에 있는 대만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교회의 성장은 놀라운 것이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성장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항상 그 성장요인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이 글의 주된 목적도 지난 50년간에 걸친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장 모습을 살펴보고 그 요인을 찾아보는 것이다.
한국교회 성장모습
성장의 요인들을 규명하기 전에 교세통계표에 나타난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모습을 되도록 상세히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표1>에서 볼 수 있듯이, 1945년 말의 신자수효가 18만3천6백66명이었던 것이 1993년 말에는 3백20만9천4백94명으로 늘어났으니, 지난 50년 동안에 한국의 가톨릭신자 수효는 1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남한의 인구증가는 두배를 약간 넘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 신자의 증가는 정말로 놀라운 것이다.
교회성장의 요인들을 보다 설득력있게 규명하자면, 지난 50년 동안에 신자수효가 17배나 증가했다는 것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시대별로 현저하게 다른 신자증가 비율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의 신자증가율을 검토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시대별로 증가율이 고르지 못하고 편차가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다. 우선 즉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기간에는 가톨릭신자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기간의 통계자료가 매우 미비하지만 1945년부터 휴전이 이루어진 1954년에 이르는 10년 동안에 6천여명 정도(3.1%)의 신자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휴전 이후 1954년부터 이승만정부의 말기였던 1959년까지 6~7년 동안에는 신자수가 크게 증가해서 증가율이 13%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다가 60년대의 군사정부 시절 초기에는 증가율이 감소했지만 7~9%선을 유지하다가,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대략 15년 간에는 증가율이 그 절반인 4~5%로 떨어졌다. 자료집계의 잘못 때문인지 혹은 실제로 신자증가가 적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69년부터 71년 사이에는 이상하게도 증가율이 매우 낮아졌다.
그러나 1981년부터 1989년까지는 신자 증가율이 다시 그 직전 시대의 두배인 8~9%선으로 올라갔다가 1990년부터 또다시 5%정도로 낮아졌다.
<그림1>에서 나타나듯이, 통계자료를10년 단위로 정리해서 고찰해도 신자증가율의 굴곡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945년부터 첫번째 10년간에는 17.3%만 증가했고, 두번째 10년간에는 2백10.5%, 1965년에서 시작하던 세번째 10년간에는 57.2%, 네번째 10년 사이에는 89.6%, 그리고 가장 최근의 10년 사이에는 60.8%가 증가했다.
한국교회의 성장율에 이러한 현저한 편차가 있다는 것은 어떤 동일한 용인들이 지속적으로 작용했는지 몰라도, 또한 각 시대마다 상이한 요인들이 작용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교회성장의 요인들이 단순하지 않았으며, 어떤 요인은 한 시대에는 작용했지만 다른 시대에는 작용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성장요인들을 규명함에 있어서 신중함이 요구된다.
▲ (표1) 1945~1993년 년도별 신자수와 성장률
▲ (그림1) 1945~1993 사이 10년 단위별 성장모습도
성장의 한국적요인
나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가져온 요인들 가운데는 지난 10년간 줄곧 작용했다고 보이는 한국적 요인들이 있는가하면, 시대별로 일시적으로 작용했던 한시적 요인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시적 성장요인에는 한국사회가 생산해 낸 교회 외적인 요인들, 즉 사회적인 요인들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교회의 성원들이 생산한 교회의 성원들이 생산한 교회 내적인 요인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성장 요인들은 일본이나 대만,태국이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풀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교회와는 현저하게 구별되는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국가들에서 가톨릭교회는 거의 성장하지 않았거나 조금만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적 요인들은 지난50년간 항상 한국 사회 안에 존재했고 계속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한시적 요인과는 다르다. 그리고 나는 세개의 한국적 요인들이 의미있다고 본다.
한국적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국전통 종교의 약화의 결과로 발생한 커다란 무종교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거론된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무종교인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자료를 검토해보면, 이상의 나라에는 가톨릭교회의 성장이 미미했지만 그렇다고 무종교인 규모가 한국에서처럼 크지도 않고 아주 작은 편이다. 대부분은 어떤 전통 종교에 속해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회등이 많이 성장했는데도 아직도 무종교인 규모가 전국민의 절반에 육박한다.
커다란 무종교인 무리가 중요한 성장 요인이라는 것은 입교자의 과거 종교를 물어보면 즉시 드러난다. 한국교회의 입교자들의 70~80%는 무종교인인고 나머지가 개신교나 불교에서 개종한다는 것은 널리 인정된다. 앞으로 무종교인 규모가 점차로 줄겠지만, 그 규모가 큰 동안은 교회가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전통종교가 강력하게 남아있는 나라에서는 교회의 선교활동도 어렵지만, 그 효과도 적고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다.
두번째 한국적 성장요인은 깊은 중교심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무종교인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해도, 그들이 반종교적 심성을 가진다면, 새로운 입교자의 원천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입교자가 무종교인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의 무종교인 중에는 종교심성이 깊고 따라서 종교를 찾아나서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래서 커다란 무종교인의 규모만이 아니라, 그들의 깊은 종교심성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세번째 한국적 성장요인은 서구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막연한 호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화기였던 1880년대에 한국민족은 서구세력과 약간의 충돌을 경험했지만, 서구세력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인에게는 피지배 경험에서 발생하는 적개심이나 거부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중에 받은 도움과 그 이후의 경험을 통해서 많은 한국인들은 서양문화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 대한 호감은 지나치게 환상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호감은 교화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개방을 아직도 꺼리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서구세력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않고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는 한국인들의 평가는 가톨릭교회로의 입교에 크게 도움이 되는 듯하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과 중국인에게는 서구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정도 존재하고 그것이 교회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장의 한시적 요인
위에서 말한 한국적 요인들은 모두 중요하고 다른 아시아의 이웃 국가들에서 볼수 없는 한국교회의 빠른 성장을 촉진했다 해도 그 성장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한국적 요인들은 지난 50년간 일관되게 존재하던 요인이기 때문에 <표1>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교회성장의 굴곡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적 요인들은 교회성장의 가능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하더라도 왜각 시대의 교회성장률이 상이한 것인지를 설명하는데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각 시대의 상이한 성장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시적 성장요인들을 고찰해야 한다. 한시적 성장요인에는 한국교회의 선교노력이나 사회참여와 같은 교회내적 요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 대문에 발생한 불안감이나 전통 지역공동체의 파괴와 도시화에서 발생한 공동체를 찾으려는 욕구등과 같은 교회 외적인 사회적 요인들이 포함된다.
1945년에서 54년 사이에는 신자통계 사정이 형편없었지만, 한국적 성장요인이나 한시적 요인들도 작용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 시기에는 신자 수효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1954년부터 59년까지 한국교회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기때문에 도시에로 이주했던 농촌출신의 새로운 도시인들이 가졌다고 하는 공동체추구욕구는 물론, 빈부격차에 따른 불안감이 성장을 초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교회의 사회참여나 선교노력도 두드러졌다고 불 수도 없으니, 그런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교회가 나누어주던 구호물자와 이승만 정권 말기의 사회적 불만이 교회성장을 가져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나타난 개신교회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회학자들은 이 시기에 도시로 이주한 농촌출신 도시인의 공동체 욕구와 빈부격차의 증가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발생한 불안심리 등을 중요한 성장요인으로 간주한다. 그같은 시기에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장은 그렇게 급격한 것이 아닌 것을 보면 가톨릭교회를 위해서는 그러한 요인들이 전연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것 같다.
한국교회 안에서 1970년에 시작된 인권운동과 사회참여도 즉시 교회의 성장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교회의 사회참여가 교회성장을 위해서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은 1981년에서 92년까지의 신자증가를 고찰하면서 몇개의 교구들을 비교한 필자의 한 연구에서 드러났다.
이 글에서 그 자료가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교회의 사회참여와 인권운동은 분명히 성장을 가져왔다. 따라서 1981년부터 다시 높아진 성장률은 어느정도로 사회참여에 기인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 성장요인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대로 한국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무종교인 집단, 깊은 종교심성, 서양문화에 대한 호감과 같은 요인들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그리고 교회의 선교노력과 사회참여와 아울러 산업화, 도시화, 빈부격차, 정치불안에 따른 불안심리와 공동체 욕구등도 각 시대에 작용한 요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