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의 오랜 갈등이 잦아들고, ‘생태학습장’ 조성이라는 중재안을 찾기까지 시민 사회는 물론, 가톨릭교회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창조질서보전에 관심을 지닌 본당, 기관 및 단체,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은 각자의 위치에서 두물머리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모습을 바탕으로 이번호에서는 가톨릭교회가 두물머리 농민들과 함께한 기록이 담긴 키워드(Keyword)를 통해 두물머리 유기농지가 지닌 창조질서보전의 가치를 밝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힘써온 파수꾼들의 노력을 되짚어 본다.
■ 생명의 땅 -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말하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에서 퇴적된 유기물과 나뭇잎이 쌓여 만들어진 곳으로 유기질이 풍부한 농토로써 다양한 유기농작물의 수확이 가능한 곳이다.
생명의 땅,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둘러싼 논란은 2009년부터 두물머리 지역이 4대강 사업 공사 구간에 포함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부의 사업을 대행한 경기도는 친환경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공사 구간에 포함시켰다.
이에 정부는 하천법에 따라 환경 보전을 위해 하천 내 모든 영농행위를 금지한다고 공표하고, 유기질 비료 사용에 따른 팔당 상수원 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두물머리 하천 정비 사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두물머리 유기농업은 퇴비가 아닌 발효 유기질 비료만을 사용해 질소와 인이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일이 없는 점과 또한 오염원 배출이 적으면서도 토양의 사막화에 따른 토양 유실을 막아주기 때문에 환경보호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의 주장에 반박했다.
▲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두물머리 강변.
■ 평화의 땅 -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지키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노력
▲ 생명·평화미사
26일 현재, 두물머리에서 봉헌되는 생명·평화미사가 921일째를 맞았다. 지난 2010년 2월 17일부터 두물머리와 가까이에 있는 수도권 4개 교구(서울, 수원, 인천, 의정부 등)를 중심으로 미사를 봉헌해오고 있다. 각 교구 및 지역 수도회 신부들은 차례로 두물머리를 방문, 미사를 주례했다.
4일, 900번째 미사 강론을 맡은 꼰벤뚜알프란치스코 수도회 윤종일 신부는 “900일 동안 두물머리에서 드린 우리의 기도는 많은 의미가 있다”며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가 시작되면서 5005인의 사제, 수도자가 4대강 사업 반대 서명을 하고, 한국교회 주교님들 중 다수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모으게 한 힘이 바로 두물머리의 기도”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행정대집행 영장 발부 등 두물머리 위기의 순간마다 전국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하는 전국집중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함으로써 농민들의 어려움을 나누는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중재가 이뤄진 지금에도 여전히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가 계속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기도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이하 천주교연대)는 2011년 12월 15~23일 오전 두물머리 입구 교각 밑에서 팔당유기농지 보존과 농민들을 위한 생명평화 9일 기도회를 열었다.
천주교연대는 정부의 4대강 공사 강행 움직임과 관련,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생명평화 9일 기도회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양수대교 교각 밑에 천막을 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4대강 사업 중단과 생명수호, 창조질서 보전을 염원했다.
아울러 2010년 1월에는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가 두물머리에서 100일 여의 단식기도를 봉헌했다. 윤종일 신부를 시작으로 수도회원들이 7~15일씩 돌아가며 단식기도를 진행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총무 양기석 신부는 “지역 수도회가 지역 사회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조용히 기도만 하던 수도자들이지만 이들이 현장으로, 사회로 나와 지역민들의 어려움에 함께 해주는 모습이 농민들에게도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 문화
천주교연대와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이하 팔당공대위),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의 농부학교 등은 두물머리 내 텃밭을 가꾸기에 동참, 4대강의 소중함과 팔당지역 농민들의 아픔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또한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문화공연도 펼쳐졌다.
▲ 2012년 8월 6일 행정대집행 강제철거에 따른 전국집중생명·평화미사 전경.
■ 희망의 땅 - 함께 하는 기쁨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전을 위해 모인 이들은 종교를 떠나 함께 어울렸다. 많은 이들이 두물머리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농민들의 마음에 귀 기울였다.
팔당공대위 유영훈(사도 요한) 위원장은 “생명·평화를 지키자는 취지에 공감하고, 우리 상황에 공감 두물머리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애써준 시민사회, 정치권, 가톨릭교회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두물머리 유기농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은 갈등통합, 사회통합의 과제가 해소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양 신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톨릭적인 보편적 가치는 선한 뜻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통교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라며 “서로 다르지만 같은 뜻을 갖고 한데 어우러져 친교를 나누는 모습에서 교회와 신앙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두물머리의 내일, 생태학습장 조성에 따른 방향 찾기
이용훈 주교가 제시한 두물머리에 대한 중재안은 영국의 라이턴 유기농정원과 호주의 세레스 환경공원과 같은 ‘생태학습장’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라이턴 유기농정원은 10에이커 규모의 유기농지를 보존하는 한편, 20여 년간 다양한 유기농업에 앞장서고 있으며, 1982년 멜번 브리즈윅 의회가 10에이커의 땅을 10년 간 지역사회에 임대해줌으로써 탄생한 호주의 세레스 환경공원은 쓰레기 집하장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유기농, 환경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직접 흙을 밟고, 작물을 심고 가꾸는 등 유기농업의 체험형식의 공원으로, 농민들은 두물머리에 조성될 ‘생태학습장’에도 이러한 형식의 체험학습장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하천법 개정으로 하천부지 내 개인경작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생태학습장’의 성격을 가늠하는 데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유 위원장은 “중재안의 실행으로 상생의 해법을 찾은 만큼 성실히 협의에 임해 유기공동체 실현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양상추 모종을 심고 있는 천주교농부학교 학생들. ‘천주교농부학교 생태텃밭 가꾸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생명의 땅 두물머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유기농민들과 뜻을 함께해 생태텃밭의 의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