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기적이라면 주님께서 늘 함께해 주신다는 것뿐입니다.”
1억의 자본금으로 10년 남짓에 1조원 대의 기업을 일궈내는 기적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든 영산그룹 박종범(카르멜로 오스트리아 빈 한인본당) 회장은 지난해 말 재유럽 한인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돼 유럽 한인 동포들의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다.
유난히 혹독했던 1998년 오스트리아의 겨울, 기아자동차 오스트리아 법인장으로 있던 그는 IMF사태로 회사가 위기를 맞으면서 귀국과 퇴사의 기로에 섰다. 고민 끝에 오스트리아에서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기적이 그에게 손을 건넸다.
“그때 누가 제 마음을 이끌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 부르심은 주님께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직원 1명과 자본금 10만 달러로 어렵사리 무역회사 ‘영산한델스’를 차렸다. 첫 걸음은 한국에서 사탕 포장용지를 들여와 유럽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이후 사업은 자동차 부품, 자동차 조립 개조 등으로 확대됐고,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4개국 25개의 현지법인에 총 1000여 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연매출 1조 원을 올리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잘 짜인 유럽 사회 안에서 동양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깨어있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늘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밀쳐내고 그분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뿐입니다.”
한국과 유럽을 잇는 대표적인 한상(韓商)이 된 박 회장이 거둔 성가(聲價)는 청소년기에 뿌려진 믿음의 씨앗이 바탕이 됐다. 광주가 고향인 그에게 살레시오고등학교 재학시절은 원체험이 됐다. 당시 신자가 아니었던 그에게 등교 때마다 어김없이 교문에 서서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맞아주던 이탈리아 선교사 원선오 신부는 가슴 깊이 각인됐다. 수업 시작 전 5분의 명상은 피와 살이 됐다. 이러한 체험은 대학 졸업 후 제 발로 성당을 찾게 만들었다.
박 회장의 철학은 그의 삶 곳곳에 녹아있다. 세례명 ‘카르멜로’도 예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던 카르멜 산에서 따왔을 뿐 아니라 회사 이름도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영산’으로 정했다.
“돌아보면 하느님만 믿고 무모할 정도로 겁 없이 뛰어든 길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늘 곁에 계시다는 믿음은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에서 드러난다. 2009년부터 한인연합회 회장으로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열정적인 나눔활동으로 명성을 얻은 지 오래다. 지난 5월 오스트리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가진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도 그가 없었으면 힘든 일이었다. 장학기금을 조성해 유학생들을 돕는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이고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등으로 사랑의 손길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말리,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니제르 등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도 나눔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지금도 1년 중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지내는 박 회장의 가난한 이들을 향한 눈길은 가없다. 한국교회에서 운영하는 소신학교를 남몰래 도와온 것을 비롯해 양로원, 재활시설, 장애인시설, 입양인 단체 등 그가 지원해오고는 있는 사회복지시설만도 일일이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이런 힘을 그는 기도에서 찾는다. 1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 그의 현지법인 사무실에는 어김없이 십자가와 성모상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겸손을 잃어버리는 것은 파멸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늘 남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내놓은 것 이상을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이룩한 것 가운데 자신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박 회장은 오늘도 주님의 도구가 되어 지구 위 어딘가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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