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도 올레길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난 기사를 읽으면서 제주도를 사랑하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신 고인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주변의 몇몇 분들이 제주도 올레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제주도가 무서워 앞으로 못 가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제주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제주도. 굴곡진 역사 앞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제주도 사람들의 억척같은 삶을 생각할 때, 갑자기 제주도가 무서운 곳이 돼버린 것이 마음을 무척 불편하게 했습니다.
사실 제주도 올레길을 상품화해 선전할 때부터 걱정했습니다. 올레길! 제주도 말로 ‘오멍가멍’ 하면서 내 집에서 마을까지, 어쩌면 내 삶과 마을 사람들의 삶이 소통하고, 서로 하나로 이어주는 연대의식의 상징이 되는 길.
그런데 그 길이 상품처럼 이름 붙여지고, 제주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대화에 종종 ‘너는 올레 몇 길을 걸었느니, 나는 이제 올레 몇 개 남았어’하며, 마치 올레길이 제주도 전부인 양 하는 말을 들을 때면 기분까지 좋지 않았습니다.
제주도 길을 상품화 했던 사람들은 성 야고보 사도 순례길을 모델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길은 오랜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침묵이 배어 있고, 삶의 변화를 경험한 이들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그 길은 지금도 전세계 사람들이 찾아와 길을 통해 소통을 맛보고, 그동안 자신들이 살아온 길은 지금껏 자기중심의 삶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이기심을 보게 해줍니다. 그 길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올레길은 짧은 시간에 많은 길을 만들어내고 싶었나 봅니다. 길의 상품성을 높이고자 멋진 길, 예쁜 길, 전망 좋은 방향을 찾아 길을 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곳은 원래 길이 아닌 곳을 길로 만들어야 했고, 전망 좋은 곳을 걷도록 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길, 외진 길, 결국 위험한 길 등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애환의 삶, 아픔과 용서와 치유의 삶이 묻어 있는 원래 있던 길, 일상의 삶을 따라 걷는 그런 길을 걷도록 한 것만이 아니라, 경치 좋은 길을 엮어 올레 몇 길, 몇 길로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예전 동창 신부들과 제주 곳자왈 길 탐방 도중 올레꾼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어 서성이고 있어 길을 알려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이들은 길 아닌 길을 쫓아 걷다가 길을 잃은 분 같았습니다.
이렇게 상품이 돼버린 길은 경제 원리가 돼 내 돈 주고 왔으니 이 길에서는 내가 중심이어야 했고, 함께 온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길은 끼리끼리만 즐기는 길이 됐습니다. 그러므로 제주 사람의 삶과 애환에는 관심이 없고, 길의 본질인 자기 성찰도 없으며 그 어떤 예의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곳이 있었나 하면서, 길은 어느새 관광지가 돼버렸고, 그들은 일정에 쫓기듯 서둘러 돌아가는, 한마디로 입소문만 좋은 시끄러운 곳이 됐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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