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한 손에 팔레트, 다른 한 손에 붓을 들고 미리 스케치해 놓은 캔버스 위에 입힐 적당한 물감 색을 고르고 있다. 언뜻 보아도 수십 번의 섬세한 붓질이 오간 캔버스 위에는 조금씩 ‘작품’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난 5일 서울대교구 가톨릭영시니어아카데미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미술클럽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성당 지하 교리실을 찾았다. 화실로 잠시 용도를 변경한 교리실 안에서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는 12명의 회원을 만날 수 있었다.
미술클럽은 평소 미술에 흥미가 있었지만, 그것을 펼칠 기회가 적었던 회원들의 뜻이 모여 지난 2011년 창단됐다. 창단 멤버 중 한 명인 이춘복(프란치스코·68)씨는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에 대해 고민하다가 ‘미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술이 행복한 노년 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져 마음이 편안해져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시간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밌습니다.”
클럽에서 회장을 맡은 이희성(카리타스·73)씨는 “미술은 체력적으로도 부담 되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말하며 미술이 갖고 있는 장점에 대해 덧붙였다.
현재 미술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12명의 회원은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는 순수 아마추어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미술치곤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회원들은 지도교사 이은산(수산나·64)씨로부터 다양한 미술 실기 수업을 받은 후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선화예고 교사로서 그동안 전공자들을 가르쳐 온 이씨에게 취미반 지도는 미술클럽이 처음이다. 이씨는 “치열한 경쟁을 거듭해야 하는 전공자들과 달리 회원들은 그야말로 미술을 즐기며 작업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원들에게 다양한 기법과 기교를 가르치기보다 재밌게 작품 활동하는 것을 더 강조했다.
“회원들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미술에 대한 흥미를 갖고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다 보면 평화화랑에서 전시를 여는 날도 올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미술 클럽이라고 해서 매주 교리실에 모여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한 학기에 두 번씩 야외수업을 열어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마주한다. 또 좋은 전시회가 열리면 빠지지 않고 찾아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도 키웠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는 회원들이지만 두 시간에 걸친 활동 시간이 끝나면 살아온 얘기, 사는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희성 회장은 “서로 비슷한 연령대이다 보니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귀띔했다.
미술클럽 회원들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약 3주. 1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회원들의 땀과 열정이 담긴 작품들도 하나 둘 모이고 있다. 미술클럽은 스스로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내년 3월 전시회를 열고 그동안 작업했던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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