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노동자의 빈곤을 초래하였다는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상태는 19세기 초에 급속히 추진된 산업화의 결과일 뿐이다. 특히 농촌지방에서 그 정도가 더 심했는데 가톨릭교회는 산업화의 희생이었다.
물론 교회가 노동자와 무산자 세계의 문제들을 자각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의 노동관계회칙인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가 등장한지 40여년 후인 1891년에야 발표되었다. 「노동조건에 관하여」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노동헌장」으로 더 잘 알려진 이 회칙은 가톨릭 사회운동을 교황이 처음으로 인정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칙에서 교회는 사회주의 이론을 반박하여 사회주의적 해결 방식을 거부하면서 사유재산제도를 옹호하고 고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하여 조합을 조직하도록 권장하였다.
농촌에서 도시에로의 급속한 인구 유입은 무질서하고 싼 임금의 노동자들을 양산하는 문제를 야기시켰고, 이로인해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이 더욱 피폐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교회는 여러가지 기구와 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와 다른 많은 자선단체들은 빈곤, 무질서, 노동자들 생활주변과 작업장의 비위생적인 환경, 급식부족, 가족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는데, 특히 노동자들이 인간의 품위와 자신의 권익을 자각하고 생활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활동에 전념하였다. 예를들면 자선단체에서 대중교육과정과 직업훈련을 하였고 노동자 정예요원을 양성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자 주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기본적인 의무가 무엇인지 자각하도록 노력하였다.
물론 고용인과 노동자들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구조를 변형하기 위한 활동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작업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정치, 사회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가톨릭 지도층 인사들은 그들의 의회활동에서 그리스도교적인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법 제정을 위하여 일하였다. 특히 프랑스에서 이 신자 의원들은 휴일 휴식을 존중하는 것을 보장하고 여성들과 미성년자들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도록 활동하면서 연금제도, 사회보장제도, 실업수당 등을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이 모든 주도적인 제안들이 노동자들에게 실제로 유익하다 할지라도 계층간 협력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었다.
사회경제적인 체제에 그리스도교를 종속시키도록 모험하는 새로운 해결방식을 주교단이 경계한 것도 이해할만하다. 사실 그리스도교 교리를 협의의 정치적문제에 연결시킬 큰 위험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사태」회칙에서 협동조합주의가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으로 칭송되는 것이 불안하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 시대에는 아직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직적인 계획이 마련되어있지 않았던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 반란을 부추기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프랑스 파리의 아프르(Affre) 대주교, 이탈리아의 비타협주의자들, 독일의 「문화투쟁」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입장처럼 교회가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위하여 권력당국과 자주 투쟁한 것도 사실이다.
노동자 세계와 교회 관계가 친밀하지 못했던 것은 교회구조가 노동자 대중에게 적응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가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가 노동자세계에 깊이 결속되어 있지 못했다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다. 원만한 신앙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교회의 대부분이 본당조직에 국한되었다. 노동세계를 위한 특별한 운동은 뒤늦게 등장하였고 사회활동을 하는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추진된 연구모임들은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 뿐이었다.
교회가 노동자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한것은 1,2차 세계전쟁 사이의 시기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반그리스도교적인 사상이 벌써 모든 분야에 침투해서 교회에 완전히 적대적인 노동자 계층의 과거의 모습을 모든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각인시킨 후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방법의 명실상부한 복음화를 시작한 것은 1945년이후 부터이다.가톨릭 신자들은 비참한 노동자들의 요구에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애덕으로 대처하고 노동자들의 생활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교회는 자체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복음화를 위하여 더 심혈을 기울이지만 인간의 정치,경제적인 현실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모두 가지고있지는 않다.그러나 교회가 노동의 신성함을 권위있고 설득력있게 가르치려면,예수님의 양부(양부)이신 목수였다는 요셉 성인을 노래로써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노동이 부당한 축재의 수단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피조물들을 공평하게 나누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선의 실현임을 교회 자체 내에서부터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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