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한해 동안 우리 주위의 불우 이웃은 물론 전세계 기아민과 난민들을 위해 보여주신 따듯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르완다 난민들을 위한 특별모금운동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풍성한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이 모금운동을 적극 지원해 주신 평화방송과 신문 및 가톨릭신문사에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르완다 난민돕기 운동에는 가톨릭 신자들만이 아니라 선의의 모든 분들도 함께 참여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모든이 안에 잠재하고 있는 크나큰 삶의 힘이라는 것이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주변에는 가난한 사람이 항상 있다고 하셨습니다(마태 26, 11:마르코 14, 7:요한12, 8). 평소에 남을 도와주면서 살던 분들도 어느날 갑자기 닥친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 인하여 하루 아침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므로 이웃사랑의 실천은 일시적인 운동이나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국가와 민족의 차원에서는 삶의 가치와 질을 높이는 문화적 차원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복지 활동은 국가와 민족의 도덕적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는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웃 사랑은 나와 공간적으로나 혈육으로 가까운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사랑의 근거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분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구세주의 고귀한 피로 구속되었다는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사랑은 국경을 넘고 민족과 종교 등 모든 한계를 넘어 온 인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특성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없이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연시에 많은 선의의 국민들과 기업 및 언론과 종교단체들이 정부와 하나가 되어 이웃돕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제 좋은 관습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정 넘치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행렬은 우리 민족이 지닌 크나큰 자랑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이 넘치는 인정의 손길은 이제 지구촌 구석구석으로까지 뻗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활동을 통한 다른 민족과 국민들과의 교류는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도 정부의 공식적 외교활동에 버금가는 힘과 효과가 있다는 것이 다른 선진국가들의 예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안에 잠재하는 하느님 사랑의 힘을 우리의 좁은 식견으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자신과 가까운 자기 가족과 친척들, 자기 고향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관심이 국내에서도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게 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도 이제는 인류 전체의 복지를 생각하는 사랑으로 극복되어야 지역 이기주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세계 시민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촌에는 수천만명의 난민이 자기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고, 10억에 가까운 인구가 아직도 절대 빈곤과 굶주림으로 고생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외면하고 내 나라 내 민족만을 생각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한 지역의 문제는 곧 전 지구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구촌 다른 지역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국가 불우이웃돕기 열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뜨겁게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이 지닌 힘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가 이 세상에 심고 키우고자하는 사랑의 문화는 사랑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이제 이 사랑으로 지구촌 끝까지 나아갑시다.
1995년 1월 29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박석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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