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정신과 노력을 바쳐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살려야 하는 예술가란 직업은 결코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국문서예의 새로운 진가를 보여줌으로써 서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서예가 경후당 김단희씨(55ㆍ요안나)는 극히 평범한 가정부주라는 이름안에서 평범치 않은 예술가의 삶을 함께 꾸려 온 보기드문 여성이다.
언뜻 보면 걷는 듯 하지만 어느새 달려와 이만큼 서 있는 그의 예술에 대한 숨은 열정은 결혼 이후 10년간 7남매의 맏며느리로서 집안 대소사에 하루하루를 바삐 보내면서도 틈틈이 붓을 놓지 않고 독학해 결국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서예부문대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서예는 종합적인 예술로서 그만큼 더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한 가정의 아내요, 며느리인 저에겐 집안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죠. 조금은 가정생활과 예술활동을 병행하기가 어려웠다는 말이 솔직한 얘기일 겁니다』
「늘 배우고자 하는」욕심과 「내실을 기하지 않는 삶은 용납할 수 없는」삶의 철칙이 그가 가정과 예술을 조화롭게 병행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미대를 졸업, 그림을 그렸던 그가 서예를 시작한 곳은 원래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국한서예(國漢書藝)」를 저술, 이조시대부터 쓰여져 왔던 국문의 정자나 흘림을 현대에 맞게 체계화하고 정립시킨 일중 김충현 선생의 맏딸인 그에겐 먹과 붓은 언제나 친근한 것이었다.
『대학다닐 때 문공부가 주최하는 신인전에서 입선을 했지요. 그후 회화와 서예의 양갈림길에서 고민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가 서예의 대가이시기 때문에 가르침도 받으며 편한 길을 가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가르침은 커녕 습작한 작품조차 보여드리는것도 어려웠고 저 스스로도 완벽한 작품을 내놓기 까지는 절대로 보여드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시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생활속에서도 틈틈이 습작해 오던 서예공부를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실시한 그는 3년 입선끝에 1984년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대부분의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국문서예가들도 한번 갖기 어려운 개인전을 지난 92년 12월 서울 백악미술관에서 가졌던 그는 국문서예의 예술성과 다양성은 물론 참신한 소재로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그는 무엇보다 이 개인전을 통해 말없는 스승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전시작품 35점 모두가 『좋다』라는 인정을 받았고 이것은 그에겐 결코 어떤 것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희열이었으며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확신이었다.
『순수성과 개별성을 지닌 것이 바로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가진 예술가라면 인간의 삶 뿐만 아니라 신앙 또한 반추해야 하며 진실되고 올바른 길을 가르쳐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죠. 자신의 인격이나 가정을 올바로 세우지 못하면 어린아이들에게 진실되고 정당한 길을 밝혀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의 모든 것이 마음 편하게 정돈돼야 좋은 작품을 낼 수 있다』는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하루를 한문공부에 투자하고 이틀은 후학 지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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