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을 용기있게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언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부패되어 있으면 부패된 것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안타까은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진리를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고통이 여기에 있었으며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오늘 1독서(예레1,4∼5:17∼19)의 내용은 예레미아가 소명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아는 BC600년 대에 활약했던 이스라엘의 대 예언자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나라는 멸망되어가고 있었고 사회는 썩어 부정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예언자가 걸어야할 길은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하는 예레미아의 노력이 오히려 비난과 오해를 받아서 감옥에도 갇혔으며 도망도 다녔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아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절까지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는 핑계도 변명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아는 그래서 박해와 고난속에서 평생을 외롭게 걸어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예언자의 길은 참으로 고달픕니다. 모세도 그랬고 이사야도 그랬으며 아모스나 호세아도 그랬고 세례자 요한이나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걷는 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신 자들만이 그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따라서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고달픈 길이면서도 또한 은혜로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기대와 꿈이 가득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마저 고향과 동족들로부터 배척받았다는 사실이 예언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빵을 좋아하며 기적을 좋아하고 명예와 권력을 좋아합니다. 자기들 동네에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나왔다하면 환영을 합니다. 하다못해 고시에 합격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 갔다해도 동네의 자부심이 세워집니다.
사람들이 대체로 환영하는 것은 예수님이 광야의 유혹에서 다 배척하셨던 것입니다. 예언자는 빵을 약속하지않으며 명예와 권력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면 그것이 사람들 가슴에 쓰든지 시든지, 용기있게 전파해야하는것이 책임이요 사명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언자들은 배성들의 반대와 비난을 받게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지난 주일 복음 내용의 연장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되었으며 하느님의 성령이 그분 위에 내리신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자기들 고향에서 그만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에 큰 자랑과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한 인간의 조건을 봤을 땐 별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고 또한 그들이 기대했던대로 구름을 타고 내려온 「사람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곧잘 하시던 기적도 자기 고향에서만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혜택이 자기들 동네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불만을 가졌으며 예수를 잘 안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더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빈정거림이 예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엘리아와 엘리자 시대에 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느님을 저버리고 벌을 받았는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인에 대한 큰 모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이 들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그분을 벼랑으로 끌고 가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이 그 모양입니다. 올바른 소리를 싫어합니다. 사회가 썩어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 독재정원 시대를 경험하면서 시대의 예언자들의 용기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독재자의 말로가 또한 어떠했는지를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언의 직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교회가 가진 사면중에 첫째가는 것이 예언직업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외치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부정에 물들지 않는 깨끗하고 양심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해서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실로 배척의 연속이었습니다. 헤로데의 칼부림으로부터 십자가의 창끝에 이르기까지 그분은 백성과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희생을 통해서 세상을 건지셨습니다. 당신을 죽인 그 세상과 백성을 건져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희생, 용기를 배워서 예언의 직무에 참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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