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론편 게재순서>
①민족의 분단과 통일 그리고 한국천주교회
……조광 교수
②현대 한국교회의 성장과 그요인
……오경환 신부
③현대 한국교회의 성장과 지배 이데올로기
……노길명 교수
➍현대 한국교회의 성장과 민족문화
……최석우 신부
해방 이후 50년간 한국교회는 외적으로 볼때 괄목할만한 성장을 계속해 왔다. 이러한 성장은 우선 경하할만한 일이다. 급속한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일원으로서 인류의 구원과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한 책임의 일부를 떠맡게 되었다. 동시에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 50년을 지내온 과정에서 민족구성원의 성숙한 일원이 되어 민족문화와 민족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할 책임을 요청받기에 이르렀다. 이 모두는 교회의 성장에 따른 당연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교회의 성장과 민족문화와의 상관관계를 규명해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성장의 문화적 배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교회가 드러내고 있는 문화적 한계와 특성을 규명해야 한다. 이에 이어서 성장된 교회가 추구해야 할 문화의 방향을 생각하면서 민족문화와 그리스도교문화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문화가 민족문화의 일부로 자리잡도록 해야 할 것이며, 한국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통해서 세계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발전시키는데에도 기여해야 한다. 해방 5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교회는 이러한 책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문화와 복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으며, 문화에 대한 우리 교회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와 민족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한 우리 교회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말하여 문화란 인류가 이루어 놓은 정신적 물질적 성과를 일컫는 말이다. 즉, 문화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고유한 능력에 의해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성과를 뜻한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진정하고 충만한 인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연이나 타인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문화란 인간이 자연과 타인 그리고 하느님과 맺고 있는 그 특수한 관계의 방식을 의미한다.
인간들의 문화에는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 까닭에 오직 하나의 문화만이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아니하고, 모든 문화는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하고 있으며 인간의 삶과 문화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들이 다양한 삶을 통해 이루어 놓은 독자적인 문화에서 복음의 씨앗을 찾을 수 있다.
이 씨앗을 찾아내고 성장시키는 것을 우리 교회에서는 문화의 복음화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문화의 복음화된 우선 각 문화에 내재해 있는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찾아내어 성장시키는 일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문화의 핵심에 도달하여 인간관계와 사회구조 및 환경을 변혁해서,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존엄한 인간성을 최대로 고양시키는 데에 기초로 작용할 씨앗을 키우는 일인 것이다.
문화에 대한 오해
지난날 우리의 교회가 문화에 가지고 있었던 입장들을 살펴보면 오늘의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날 교회에서는 복음 내지 신앙과 문화가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논하는 데에 몇가지의 입장이 있었다. 그 가운데 우선 주목되는 것으로는 패권주의 내지는 정복주의적 입장을 들 수 있다. 이 견해에서는 문화와 복음을 동일시했다. 이러한 경향은 지리상의 발견 직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 이해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들은 문화와 복음을 동일시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 내지는 가톨릭 교회가 곧바로 유럽의 문화의 전부이고, 그리고 유럽의 문화만이 인류문화에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중세 교회의 명제와 관련하여 유럽문화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해 왔다. 여기에서 그들은 우선 유럽의 그리스도교 문화 외에 모든 문화를 흡수나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인식은 복음과 문화를 동일시 한 데에서 발생한 오류에 지나지 않았다. 이 오류에는 현실 정치적 정복욕과 식민주의의 탐욕을 정당화하려는 저의가 깃들어 있었다.
당시 유럽 교회의 일각에서는 비그리스도교적 문화를 정복 하여 그리스도교화 하고자 하는 데에 신명을 다했으며, 이 일에 그들은 「문화적 사명」을 강조해왔다. 일부의 선교사들은 우월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열등한 피선교지(被宣敎地)의 「야만문화」에 이식시키려는 듯한 그릇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날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사들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거룩한 정복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지난날의 사실에서 우리는 오만한 문화제국주의의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복음과 문화의 분리
지난날의 이와 같은 태도는 가톨릭 신앙의 전통적 가르침과는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들의 그릇된 태도는 가톨릭 신앙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위배한 것이었다. 이는 하느님이 인류에게 가르쳐준 인간 존엄성과 평등성의 의미를 상실케 했다. 한 문화가 타 문화에 대하여 지배와 예속을 강요하는 일을 정당한 것으로 승인했다. 이 입장은 새롭게 가톨릭 신앙을 받아 들인 지역에 있어서 새로운 신도들에게 기존의 문화공동체와 자신을 스스로 결별케 한 오류를 범했다. 이 오류로 인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교회의 사명은 당연히 제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교회는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러 교회는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여 이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교회는 「복음과 문화의 분리」라는 일대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각 민족문화의 통로를 따라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교회는 가톨릭 문화의 획일성을 논하기보다는 그 다양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교회는 문화의 복음화를 시도하면서 민족문화와의 화해를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복음화를 통해서 자기문화의 선성(善性)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이 속한 민족 문화의 올바른 정을 밝혀내고 이를 찾도록 하는 데에 이바지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이와 같이 변화된 이해는 지난날 교회 일각에서 드러내고 있었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임이 틀림 없다.
교회와 민족문화
문화는 꿈과 신념의 투사체(透寫體)이다. 인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과 신념의 실현을 위해 그침 없이 노력해 왔다. 인류는 그 꿈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특정한 신념을 형성하게 되었고,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 검증하려는 과정에서 꿈이 깃든 문화를 일구어 왔다.
이 땅에 자리잡은 교회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에서 인간의 구원을 갈망하던 사람들이 형성한 공동체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꿈을 꾸었으며, 이질적 신념을 소유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꿈과 신념은 여느 사람들과는 분명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질시와 탄압을 받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리스도교적 꿈과 신념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제약성과 근현대라는 시간적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꿈과 신념은 유럽 교회의 그것과 완전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문화는 복합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즉 그것은 세계 문화 내지는 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해서는 한국문화로서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그것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부분적 특수성을 띄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세계 그리스도교 문화의 일부로 존재하고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한국인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 소명을 받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 여러 복합적 측면가운데에서 한국의 민족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를 창조적으로 조화시켜 나가는 일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리스도교 문화를 민족문화의 일부로 굳건히 자리잡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교회는 우리 문화의 복음화를 추진해나가야 한다.
복음화를 위한 노력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창설이 후 2백여년의 연륜을 축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광복 이후 50년간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 교회는 역사과정은 한국문화가 그리스도교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동시에 이 기간은 그리스도교 문화가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문화가 이루어졌다.
한국의 그리스도교 문화는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의 단순한 이식은 아니다. 모든 수용되는 것은 수용자의 양식에 따라 수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문화가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도 이 원칙은 틀림없이 지켜졌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화의 복음화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가지 과제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즉 우선 우리는 지난 2백여년간에 걸쳐서 이 땅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문화의 실체를 밝히고 그 특성에 대한 가치판단을 시도해야 한다. 2백여년 동안 이루어 놓은 기존의 토양 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문화를 새롭게 창조해 나가며, 우리 문화의 복음화를 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관한 충분한 연구를 아직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우리 교회사와 현대의 한국교회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연구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에 이어서 우리는 이른바 「보편문화」의 중요성 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자세를 극복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역사적, 교회사적 맥락을 도외시한 외국의 선교이론이나 역사 해석의 견해들을 우리의 교회사와 교회의 이해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비판적 자세는 양대인(洋大人)복사의 주눅들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천민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우리는 민족 문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자기모멸적 태도를 극복하고, 민족문화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 나가야 한다. 제3세계에 있어서 민족문화의 가치에 대한 발견 그리고 민족 생존을 위해서는 민족주의의 공이 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생존의 힘을 주고, 문화가치를 발견케 해준 건전한 민족주의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외래 문화에 배타적이고 문화의 다양성을 부인하는 폐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전개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종합적으로 전개될 때 민족문화의 복음화는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 교회는 자신의 선교사명을 올바로 수행하여 새로운 미래사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