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세기동안 세계는 예측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변해왔다.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 인한 기계공업의 급속한 발달로, 그리고 과학적 발명을 산업과 통신에 응용함으로써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단한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이 시기는 아래와 같은 3가지의 특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소비재의 대량생산이 촉진되었다. 공급과 수요를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물류유통이 증가하면서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식민지 정복으로 세계가 거대한 시장으로 되었고 국제관계에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2, 대량생산은 산업의 막대한 집중화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소규모 공방은 거대한 공장에 기존의 역할과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모든 생산구조는 원자재 공급과 노동자 수급이 가능하고 판로가 좋은 장소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여건을 갖춘 대도시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공방의 직공 다수가 일찍부터 무산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3, 생산품의 양을 증가시키고 품질의 향상을 위해 항상 보다 많은 재정적인 투자를 요구하였다.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생산수단을 실현시키는데 필수적인 자본을 모으기 위한 주식회사와 증권회사를 설립하기에 필요하고 가능한 조건이었다.
마르크스는 이 모든 관계에 있어서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에서도 원동력으로 간주된다는 계급투쟁의 진행으로 이해하였다. 경제적 혁명은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고 공동선의 본성과 지상의 축복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사회주의적인 이념들은 자본주의 교리보다 더 정밀하고 더 철학적이면서 보다 실용주의적인 내용을 수반하고 무엇보다도 기존의 정치질서에 진취적인 개념으로 자유의 옹호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등이 출현하는 갈등에 대하여 교회는 입장 표명을 늦게 하였다.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활발하게 자선활동을 전개하였지만, 1849년의 공산주의 혁명에 놀란 가톨릭 신자들의 대부분은 보다 과격한 노동자들의 조직으로부터 주창된 무신론적인 물질주의에 맞서 신중하게 처신하였고 정당성 여부를 떠나 자본주의에 호응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길을 터놓았다.
19세기말 「새로운 사태」회칙에서 자신의 사상을 피력할 때 레오 13세 교황은 불분명한 태도를 띠었다. 노동자들의 혹사상태와 자본주의의 잔혹한 무한경쟁을 비판하였으나 자연법에 보완성과 상호의존성을 설명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선을 따를 것을 권유하면서 개인의 소유권을 옹호하였다. 노동의 목적과 근본동기자 사유재산을 취득하는데 있다고 하며 사유재산권은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새로운 사태」회칙은 명백히 가톨릭사회정신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교회는 당시 자본주의를 지지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산업화 사회의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남용을 강력하게 고발했어야 했을까? 사실 진퇴양난의 이러한 상황에서 아래와 같은 여러가지 동기로 교회의 선택은 불가능하였다.
1, 확실히 교회는 산업혁명이 야기시킨 여러가지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전통적인 가톨릭국가들이 새로운 산업시대의 흐름에서 더디거나 후퇴하는 동안 영국, 독일, 미국 등 근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보다 철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교회는 직접적으로 이미 확정된 일에만 그리고 그 변화가 돌이킬수 없는 기정사실로 굳어진 때에만 그에 대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무산자로 전락하는 대중들의 탈(脫)그리스도교화 현상이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적인 제반 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하는데 주저하게 하였다.
2, 교회는 물질적인 경제문제에 개입할 어떤 특별한 권한을 보유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의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강조하면서 재산의 현실적 상태에 대한 설명보다는 이상적인 모형을 제공할 뿐이었다. 교황은 양심을 일깨우고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상기시키지만 정치, 경제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을 자기 직무로 여기지 않았다.
3, 자본주의는 하나의 교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비록 명백한 위험을 안고 있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실천적인 사실이다. 사회주의는 그나름대로 많은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무신론적인 물질주의를 포함하여 여러가지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교회는 자본주의를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선언할 아무런 동기도 가지고 있지않으며 또한 무조건적으로 연대해 야할 입장도 아니다. 사회주의처럼 자본주의도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하느님을 배제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신앙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교회는 경제제도를 선택하는데 고유한 권위를 행사하는 책임을 거부하면서도 단순히 「경제적인 인간」(Homo oeco-nomicus)으로만 인간을 정의하고자 하는 모든 제도와 구조와 맞서서 인간의 존엄성을 향상시키는 과업을 수행한다. 사유재산을 하나의 사실로써 인정하지만 그것을 이상화하지 않고 오히려 사유재산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을 갖는 것이며 재화가 만인을 위한 것이라는 원리에 기반을 둔 「사회적 저당권」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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