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해」조직위원회가 뽑은 한국미술의 거장 12명 중에 신자화백 두명이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고 김종영(프란치스꼬) 화백과 고 이순석(바오로) 화백이 그 주인공. 이 두 화백의 예술관과 신앙관을 그들의 직제자들을 통해 차례로 소개한다.
조각가 장발 선생의 직제자로 지난 82년 세상을 떠난 고 김종영 화백은 추상 조각의 기반을 다진 은둔의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장발 선생의 제자들이 모두 일찍이 가톨릭교회에 입문한 것과는 달리고 김종영 화백은 작고하기 전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고 김종영 화백의 직제자인 서울대학교 미대 조소과 최종태 교수에 의하면 김화백은 휘문중학교 시절 장발 선생의 권유로 「도쿄」에 가서 조각을 공부하고 해방이 되면서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생겨 교수로 봉직한 이래 그곳에서 정년을 맞기까지 바깥에는 한발도 나간일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탐구하는 일과 교육에 봉사하는 일과 교육에 봉사하는 일외에는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아 일반적으로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의 현재조각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예술가라는게 한국 화단의 평이다. 이른바 추상조각이라는 형태가 이 땅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고 김종영 화백 덕분이라는게 그를 아는 후학들의 얘기다.
최종태 교수는 스승인 김화백을 『격동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전적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세상에는 은자의 모습으로 비쳐졌다』고 회고하면서도 『그의 조각적 형태는 그 시대에 더없이 진취적이고 혁신적이었지만 그의 삶은 옛날 조선시대의 선비의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시대에 거족의 자취를 살면서도 세상으로부터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년으로 갈수록 자유를 즐겼다고 한다.
최교수는 『나는 지금도 그런 큰 스승을 가까이 모실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그를 만나면 힘이 생기고 어떤 향기 같은 것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고 김종영 화백은 1915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교수로 재직. 교육자의 길을 계속걸었다. 53년 런던에서 공모한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방」전에 입상한 그는 한국디자인센터 이사장을 역임 하기도 했다. 그가 작고한 후 지난 1989년에는 호암갤러리 초대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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