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처지가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더 간절하게 그분께 의탁하고 매달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길이며 축복받는 길입니다. 만일에 자신의 일이 잘 안된다해서 하느님보다는 세속의 지혜로 처신을 하려고 한다면 그는 그 자체로 하느님을 모독할 뿐만 아니라 참된 복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행복은 누구나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마저도 그 행복을 세상의 기준으로만 판단합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권력이 있으면 행복하며 사는 것이 편하면 행복한 줄 압니다. 그래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 행복을 잡기에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참 행복은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부서지는 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예레 17, 5∼8)에서 예레미아는 사람을 믿지 말고 오직 하느님을 믿으라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사람을 믿는 것이 더 쉽게 보이며 또 안전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속입니다. 세상도 우리를 속입니다. 하느님만이 진실하시며 하느님만이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도시 본당에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골 사람들보다 도시 사람들이 점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자들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혼인을 한다, 시험을 본다, 그리고 뭐가 잘 안된다하면 우선 점쟁이 한테 달려갑니다. 거기가서 뭔 말을 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믿는 하느님은 도대체 뭡니까.
사람이 무엇을 믿으려면 보다 완전하고 확실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믿을 수 있는 분은 우선은 자기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에게 순명하고 그분 뜻에 따르는 것이 결국은 행복입니다. 거기서 복이 옵니다. 그런데 자녀가 자기부모는 신뢰하지 않고 어떤 건달이나 불량배들을 더 따르고 신뢰한다면 그럼 그 부모는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에 불행의 원인이 있습니다.
행복이 뭡니까.
오늘 복음에 보면 행복한 사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고 굶주린 사람이 행복하며 우는 사람이 행복하고 그리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부유한 사람이 불행하고 배부른 사람이 불행하며 웃는 사람이 불행하고 그리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사연입니까.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여 지위가 높으면 행복하고 그리고 남에게 굽히지 않고 떵떵거리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세속의 사정에 만족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붙잡지 않습니다. 자기 재물, 자기 지혜, 자기권력에 의존하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행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붙잡을 것이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이나 억울하게 당해서 우는 사람이나 그리고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여럿 있어도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은 항상 어린 아기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놈은 큰 놈대로 재 일을 제가 처리하기 때문에 부모께 의존하는 것이 약합니다. 둘째도 셋째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기는 전적으로 부모의 손에 의탁되어 있습니다. 붙잡을 것이라곤 부모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아기가 더 행복한 것입니다. 부모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환자 마을이 있는 그들이 어려웠을 땐 붙잡고 매달릴 것이라곤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그 이유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따뜻한 방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하느님을 붙잡지 않습니다. 안 붙잡아도 편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불행합니다! 하느님과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붙잡는 슬기가 있을 때 그는 행복하고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지혜가 있을 때 그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은 복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가까이 있으면 어떤 처지에서도 행복하지만 그분과 멀리 있으면 아무리 잘 살아도 실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지혜를 알아야 합니다. 참 행복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재산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편하고 즐거운 것으로만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누가 더 하느님께 의지하고 신뢰하느냐에 행복의 기준이 그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믿지 말고 주님께 의지하도록 합시다. 힘들고 어려우면 더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뜻에 따르도록 합시다. 그것이 바로 참 행복입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예레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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