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해방 50주년을 맞는 우리는 해방 당시의 천지를 진동시키던 환성과 기쁨을 회상하면서도 민족적인 큰 아픔을 다시 되새기게된다. 그것은 국토가 반으로 찢어지고 전화로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낸 6ㆍ25 민족상잔의 비극과 그로 인한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과 남과 북을 서로 오도가도 못하고 생사의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인간 삶의 최악상태에 놓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일에 대한 열망은 날이 갈수록 더 간절하게 되었고 통일은 해방50주년 즉 분단 50주년을 맞은 이 민족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 됐다. 그렇다고 무작정 통일만을 지향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89년 후반기에서 1990년 상반기에 걸쳐 소련과 동구전역에 급류처럼 휘몰아친 공산정권의 붕괴와 자유회복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독일의 경우 동ㆍ서독의 통일은 통일을 내심 바라지 않은 어떤 국가도 한마디의 개입조차할 수 없는 양국민들의 전격적 합류사건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합리성과 경제ㆍ민주체제 등은 쉽게 모든 난관을 단시간에 극복하고 양쪽이 하나로 발전하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또 국가사회의 저변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서로가 쉽게 교류하며 마음의 장벽과 사회적 장벽을 허물 수 있었다. 그런 신앙적 바탕에서 지난 수십년간 그들은 통일을 위해 꾸준히 마음의 준비와 물적준비를 해왔다.
통일은 역사의 선물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바탕은 거의 없는 셈이고 민족적 독립성이라는 강한 유대감만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이 너무 오랫동안 폐쇄와 마르크수주의적 철저한 이념교육으로 세뇌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통일은 구호나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묵묵히 실력을 배양해야 가능한 것이다.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적 발전, 다시말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때 역사 즉 인류문화의 발전의 선물로 통일은 주어진다는 것을 실감케 된다. 그런데 우리는 큰 소리치는 구호적 통일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생각이 들때가 있다.
외부적 압력에 의해 통일이 된다면 예기치 못했던 민족비극도 유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너무 서두르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동양에서는 아직 동구와 같이 공산주의적 독재체제가 무너지는 시간대가 오지 않은듯 싶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공산주의로 남아 있는 한 북한의 공산체제도 금시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현상태에서 갑자기 통일이 된다해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나아가 일반시민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큰 혼란과 갈등이 뒤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통일이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8ㆍ15해방이 느닷없이 닥친것처럼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여건하에서는 이산가족 고향방문, 자유로운 왕래만 되어도 큰 성공이고 통일에 매우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을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재촉하기보다는 인내로서 기다리며 통일후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통일준비일 것이다. 통일은 어차피 멀지 않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북한체제 붕괴
특히 교회가 그렇다. 교회의 어떤 계획이나 구상은 북한선교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2천년대의 교회상 구현은 더욱 그렇다.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이 적당하고 적당치 않음을 막론하고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북한 교회와 자주 접촉을 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 교회의 진위성(眞爲性) 즉 진짜 신자이냐 가짜신자이냐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겠다. 그러나 비록 가짜신자들과 만난다할지라도 접촉을 계속해야한다. 마치 예수님이 참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도 위선적인 사람도 또 중간적인 사람도 다 만난것과 같이 그들중에는 진짜 신자도 섞여 있을 것이고 또 그 가짜라는 사람들도 접촉하는 과정에서 진짜 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는 문을 계속 두드리는 지혜와 인내,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 서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지금 중국의 애국회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 접촉이 직접 여기서 이루어지면 가장 좋은 것이고 미, 일, 중 등의 교포교회를 통해 이루어져도 좋고 독 불등 구라파의 교포교회를 통해 이루어져도 좋을 것이다. 단 이쪽 주교단 혹은 평양교구장이나 함흥교구장과의 연결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잦은 접촉이 지름길
또한 통일에 대비한 교회의 사목적 실천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연구와 자료수집 등에 근거하여 치밀한 사목적 분석과 종합대책을 세워야 된다. 성직자 수도자는 물론이고 평신도 선교일꾼들의 양성이 필요하다. 해방전 평양교구의 경우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에는 30∼40개의 공소들이 속해 있었다. 공소에는 대개의 경우 유급회장이 있었고 때로는 그 공소의 신자중에 덕망있는 사람이 회장이기도 했다. 이들은 유아세례, 혼인, 임종, 예비자교리지도, 주일공소예절 등을 주재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지하에라도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통일이 될 때 그런 뿌리들을 찾아 교회를 복권내지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도라 생각한다.
지금 동구 공산체제에서는 가정, 유치원에서부터 모든 상급학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50년간 철저히 공산주의 교육을 해왔다. 즉 모든 인민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사회과학교육을 시켰고 또 사회의 골격과 구성원들이 그런 사회과학에 근거하여 형성되었기에 겉으로는 민주주의로 변했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인 것이다. 이점을 제8차 세계대의원회에 참가한 동구권 주교들은 매우 우려했다. 이것이 교회복권과 선교에 큰 지장이라는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 이북은 더욱 그럴 것이기 때문에 통일이 됨과 동시에 평양 함흥 등지에는 가톨릭 인문대학과 사회대학설립이 시급히 요청된다.
현재 상태로 통일이 된다면 북쪽은 굶주림과 헐벗음 가난과 질병이 극심한 상태이니 선교는 반드시 동시적으로 혹은 선교에 성행하여 자선기관과 의료기관은 물론 제반 복지시설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 준비가 요청된다. 우리가 6ㆍ25동안때 미국의 가톨릭 구제기구 등 우방국가들의 구제활동 의료 기관 등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런 사업들은 선교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알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한의 국민들 특히 크리스찬들의 의식문제이다. 진정한 북음정신으로 이북의 동포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해야 하며 복음적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다. 이런 의식변화 혹은 마음 준비는 교회가 수행해아 할 중대한 의무이다. 독일 통일 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물질적 빈부의 격차가 아니라 동독인들의 심리적 열등감과 양독 시민들의 심리적 갈등이었다고 했다.
통일후를 대비 마르크스주의와 그런 사회지탱의 핵인 사회정의 문제 특히 노사문제와 몰수 분배된 토지소유권문제 등에 대해서도 교회의 사회정의 입장에서 연구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통일문제는 하느님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손길에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개심이 필요하다.
복음으로 무장하자
이런 문제 해결의 근본은 마치 통독이 서독의 정신적 물질적 힘에 달렸듯이 남한의 정신적 물질적 힘에 좌우된다. 현재 남한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정착, 경제발전 언론자유 등 긍정적인 점도 많지만 빈부격차 각종 부정과 비리, 민생치안문제, 생명경시 풍조 등 어두운면이 많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할 때 국민들이 흥분한 많은 용어들과 시책을 공언했다. 「인사는 만사다」「개혁」「사정」「금융실명제실시」「정치법 개혁」「군개혁」등등. 물론 그 모든 것이 이 나라의 풍토에서 역사적 사건들이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것 또한 사실이다. 통일 안보와 같은 중차대하고도 한반도 주변이 아주 미묘한 문제에 실무경험과 경륜이 없는 학자들을 장에 앉힘으로써 서로가 안맞은 것은 물론이고 북한의 능수능란(?)한 외교에 번번이 휘말린 꼴이 되었다.
우리의 사활이 걸린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등에 있어 우리는 완전히 소외되고 북의 의도대로 북-미간의 회담과 협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국민들은 불안해 한다. 다른 한편 이정부가 들어선 후 계속해서 대형인명사고가 잇따랐다.
구포철도전복, 서해페리호침몰, 목포 비행기추락, 성수대교붕괴, 충주댐여객선 화재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재에 의한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그때마다 수십명, 수백명씩의 인명이 죽어갔다.
인간성회복 급선무
그뿐 아니라 자식에 의한 끔찍한 부모 살해, 지존파 사건, 온보현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더니 요즘은 세도가 전국에 암처럼 퍼졌고 군에서는 사병의 장교길들이기, 사관학교출신군장교의 은행강도 둔갑 등 민생치안과 민심이 말이 아니다.
경제는 나아진다고 하지만 점점더 빈익빈 부익부로 치닿는 것 같다. 세계화도 좋지만 진짜세계화를 이루는 선진국들 처럼 실속있게 일하는 정부이었으면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옛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먼저 심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린 연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온세상을 평안케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가 이땅에 실현되면 좋겠다.
물론 이런 전대미문의 대 참극을 막고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참된 민주국가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선도자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결국 국민 각자가 자기할 바를 다하는 자발적 시민의식 즉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이 땅에서 도덕과 인간삶이 분리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인간성의 황폐화와 파탄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명존중이 시발점
인간성회복은 역시 생명존중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생명을 경애하는 정신과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참으로 인간적인 삶이 될 것이다. 오늘날 인간생명존중 사상은 인간들이 자연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대로 지켜야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문화연구소가 발족하면서 내건 표어 「생명은 최고의 가치」「자연과 인간생명을 수호하자, 사랑하자, 풍요롭게하자」는 인간성회복 도덕성 회복 올바른 가치관 정립등 인간사 모든 것의 기초가 되며 인류공동체 개념이다. 앞으로 도래하는 인류문화의 기본개념은 생명존중사상이다. 남북통일의 공통개념, 기본개념도 여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북쪽의 호전성(好戰性)도 이데올로기를 넘어 자연과 인간생명 존중사상에서 해소시켜야 할 것이다. 인간생명을 학살하는 전쟁은 어쨌든 피하고 생명존중사상에서 모든 것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인간됨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도 자유도 복지등도 다 생명의 속성적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삶의 구체적 표현인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 특히 인성교육도 다 자연과 인간생명존중과 사랑에 바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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