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눈이 내려 온통 세상이 은빛으로 변해버린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탄광촌의 산과 들은 모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하얗게 변해버린 자기들의 보금자리가 그리 달갑지 않다.
『제가 어렸을적만해도 거리는 물론 시냇물까지 그야말로 시커먼 검정색이었으나 요즘에는 시냇물이 전보다 맑아졌습니다. 그러나 시냇물과 온 동네가 탄가루로 시커멓던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가 좋았습니다.』
고한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영진군이 탄좌가 줄어들면서 떠나버린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하는 말이다. 현재 고한에는 삼척탄좌가 유일한 이들의 젖줄이자 생명줄이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을씨년스러운 동네 분위기 처럼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삭막해져 가고 있다. 처자식들을 거느리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고한을 찾았던 많은 이들이 지금은 허탈감속에 빠져들어 알콜 중독자로 전락되거나 희망을 포기하고 도시로 이주해갔다. 그러나 도시로 떠난 이들은 대도시 주변에 슬럼가를 형성, 도시빈민이 되어버려 사회문제의 악순환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신(神)이 버린(?) 검은땅 고한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작은 아이들이 있어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심회(관구장=손인숙 수녀)에서 지난 9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흑빛」 공부방에 대한 35명의 어린 친구들은 척박한 현실이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의연하게 자신들의 현실을 헤쳐가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결손가정이거나 소년소녀가장이 되어버린 흑빛 공부방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곳에 나와 공부하며 공동체성을 배우고 있다.
흑빛 공부방에 나오는 고한여중 3학년 심영환양은 『고등학교까지는 학비가 면제되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으나 수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과 유학을 꼭 가야하기 때문에 정부와 삼척탄좌에서 나오는 보조금(월 10만원정도)을 몇 년 전부터 정기적금을 붓고 있다』고 밝히고 『비록 부모님이 계시지 않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내 꿈을 꼭 이루고야 말겠다』고 야무진 포부를 피력했다.
공부방 운영을 위해 밤 낮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성심회 신소희 수녀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의 장점을 살려주고 싶으나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아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해 안타깝다고』고 심정을 토로하고 『볼거리 들을거리가 전무한 지역문화로 인해 아이들이 성취동기를 만날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을 버려둘 수 없는 것』이라며『많은 이들이 이 아이들의 미래와 희망을 키워주기 위해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고한본당(주임=위종우 신부) 사회복지회와 성심회, 삼척단전 그리고 60여명 정도의 후원회 회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흑빛」공부방은 아이들을 지도할 교사와 운영비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다.
탄광촌이 다 그렇듯이 청소년들이 전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전무한 상태이고 보면 「흑빛」 공부방의 역할은 청소년들의 교육적 측면에 상당히 기여하고만 하더라도 극장이나 문화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학생들은 방학때면 하루종일 TV앞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노래방 등 유흥업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일찍부터 음주와 흡연, 성에 눈을 뜨게 되는 청소년들이 바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몰이해가 청소년교육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한의 각급학교 교사들은 『학교교육 뿐 아니라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가톨릭을 비롯 교회기관에서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을 마련, 건전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 년 후면 탄광촌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한의 주민들은 한 개의 탄광만이 운영되고 있는 현상황에서 생계마저 걱정이 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아이들 교육문제는 더더욱 신경을 쓰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반해 아이들은「의상디자이너」「태권도국가대표」「과학자」「수학교수」등 야무진 꿈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갖게 될 좌절감이 어떻게 현실로 드러날지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는 주민들이 고한의 발전을 위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결국 정부가 이 문제를 끌어안아야 될 것으로 보인다.
고한본당 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어울림」에서 다시 학교다니기 위해 ABC부터 다시배우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누가 어떻게 도와야할지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현재 흑빛 공부방과 고한본당에서 이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열악한 재정과 인력으로 인해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