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석 선생은 구교집안으로 한 때 신학교에 갈 생각까지도 했던 양반입니다. 한국미술계에 공예라는 조형미술분야를 세우셨고 평생 교육자이자 예술가로 또 참 신앙인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95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로부터 한국화단을 빛낸 거장 12인에 뽑힌 고 하라(賀羅) 이순석(바오로) 선생에 대한 그의 직제자 권순형(프란치스코ㆍ전 서울대 미대교수) 교수의 회고담이다.
충청남도 아산 공세리에서 자라난 소년 이순석은 당시 아산본당의 파리외방전 교회 성일론(成一論:데뷔스 에밀리오) 신부로부터 음악과 미술지도를 받았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한국미술사에 길이 남을 거장(巨匠)이 되었다.
성신부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영신적 영향까지 받게 되어 한때는 신부가 되기 위해 동성고보를 거처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예술가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고 이순석 선생은 신앙인으로서도 훌륭한 삶을 살았다.
1935년에 설립된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건립)의 정면벽 양측에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초상(120호 유화)을 그린 것을 효시로 해방후 후암동성당 창립시 초대회장으로 20년간 봉사하기도 했다.
고 이순석 선생은 유럽 성지순례 기간 중에는 교황 요한 23세에 기증한 혈자십자자 성수기(血紫十字聖水器)가 로마 바티칸 대성당에 남아있고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 관에 있는 오석으로 된 순교자입상(殉敎者立像)도 명물 중의 하나다. 또한 서울미대 재직때인 1962년에 미술계로서는 두 번째로 대한민국문화훈장을 수상했고,국전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상공미술전현회를 제안창설 함으로써 응용미술의 공업화라는 또다른 차원의 변모를 구축하기도했다.
1977년에 여의도 국회의 사당이 신축됨에 따라 도약을 상징하는 서있는「해태」석상 한 쌍을 정문앞에 우뚝 세워 대한민국 국회의 위상을 드러내기도 했던 고 이순석 선생은 석조예술의 작품수가 2천4백여점에 이르러 한국 미술계의 조형예술이 힘차게 웅비 할 수 있는 밝은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국디자인의 태두(泰斗)이며 현대공예 전반에 걸친 거목(巨木)이었던 하라(賀羅) 이순석 선생을 대한민국 예술원의 원로회원으로서 그 생애를 마칠 때까지 일관하는 신앙생활과 고매한 예술의 경지를 소신껏 불태운 금세기 이 나라의 지울 수 없는 별이라고 그를 아는 이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순석 선생이 1986년 10월 7일 강남성모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조용히 영면한 후 생전에 늘 화목했던 금슬을 말해주는 듯 바로 이틀후에 부인도 같은 병원에서 선생의 뒤를 따라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장녀는 20년전 미국의 뉴욕 근교 하트포드로 이민가 살고 있으며, 현재 외아들인 용구씨가 방학동에서 가친의 뒤를 잇는 석조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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