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끝나면 회식자들은 자유로운 담소를 나눈다. 식사때에 예수께서 당신을 배반할 사람이 12제자들 중 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할때 다른 제자들은 서로 자기는 아니라는 다짐을 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들만큼은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겠다는 결심을 마음속에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이란 아직도 세속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중 한 사람은 돈 때문에 주님을 배반했다. 나머지 제자들도 돈때문에 주님을 배반하는 일은 하지 않더라도 누가 더 주님 가까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주님께 충성하는 것과 높은 자리를 얻는 것을 정비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후 자유 담소시간에 제자들은 높은 자리에 대하여 토론하고 있었고 그 문제를 주님께 여쭈어 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그렇게도 영적인 교육으로 하느님 나라 설교를 많이 하고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시켰지만 아직도 제자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끊지 못하고 있다(대목 267 참조).
이제부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교육시킬 것은 겸손과 사랑의 일치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겨주실 하느님 나라의 성격은 사랑과 봉사의 나라이지 권력과 통치력으로 아랫사람들을 부리는 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를 앞으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맡기시려고 한다. 그 나라에서는 식탁에서 높은 사람이 아랫 사람들에게 시중들며 봉사하는 그런 나라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바로 내일 눈 앞에 두고 계신다.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이제 제자들에게 물려주시려고 한다.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업을 맡겨주시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께 무척 사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낌없는 교훈을 남기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라고 요한복음서는 전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의 최후 만찬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제자중 한 사람은 악마에게 팔려서 스승을 배반하려고 하고 있고 제자들은 철없이 세속의ㆍ영예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래도 예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다.
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이 행위는 사랑의 극치였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갚아 주고 해악을 끼치는 사람에게 은덕을 베푸는 전대미문의 사랑의 모범이다.
사랑의 표시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예수께서는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제자들과 그 교회는 앞으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 사랑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배반자 유다스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발을 씻어 주셨다. 유다스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동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이렇게 외쳤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주님이 제 발을 씻으시다니』인간적으로는 베드로의 말이 타당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상 죽음을 미리 알릴 때에도 베드로는 인간적으로 옳은 말을 한 일이 있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마르8,32이하). 그때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책망하셨다. 이번에는『내가 너를 씻지 않으면 나의 편이 아니다. 후에 알아 듣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역시 인간적으로 알아 들었다. 씻음을 당하는 것이 큰 은혜를 입는 것으로 알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발뿐만 아니라 온몸을 다 씻어 달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목욕을 한 사람은 이미 깨끗한 몸이니 발만 씻으면 된다』라고 히셨다. 이미 세례를 받고 깨끗해졌으니 그 후에 더렵혀진 발만 씻으면 된다는 뜻이고 발씻음은 고해성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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