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이 은혜로운 것은 우리가 이 시기에 보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도 부활의 빛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필요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1독서(신명 26,4~10)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은 첫 곡식을 하느님께 바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백년 동안 남의 나라 땅에서 노예생활을 했으며 그리고 약속의 땅을 얻기까지에는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수확을 얻게 되니 그 감회가 얼마나 깊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세월 어려웠던 사건들은 모두다 자신들의 죄의 결과였으며 그때마다 하느님은 벌을 주셨지만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해 주시기 위한 그분의 섭리요 계획이었습니다. 지내고 보니 하느님의 사랑이 아주 새롭게, 그리고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래서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은 누구나 광야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몸 붙일 곳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혼자서 고달프게 걸어가며 여러가지 고난을 두루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느끼기도 하며 버림과 치욕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느님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드뭅니다.
언젠가 병상에 누워있는 어떤 형제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때 그 형제가 그랬습니다. 아프고 보니 예수님이고 하느님이고 안 보인다는 것이며 기도하며 선하게 살았던 결과가 고작 그것이냐면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사실 고통을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없다면 신앙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던 바로 그 비슷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며 시험을 받으십니다. 성서에서 광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며 또한 마귀의 유혹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순절이라는 광야에서 똑 같은 것을 체험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특별히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셨던 세가지 유혹, 즉 빵과 권력과 공명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욕망에 대해 묵상을 해야 하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간힘을 쓰기 보다는 오히려 가지고 있는 그것들을 나누기 위해 우리의「광야」를 걸어가야 합니다. 사순절은 바로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한번 바라보는 시기입니다.
돈이고 권력이고 채우면 채울 수록 부족하게 됩니다. 그것들은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배가 가득차서 터질 지경인데도『물! 물』하면서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나누면 나눌수록 넉넉하게 됩니다. 호주머니에서 아무리 꺼내어 나누어줘도 늘 가득 차있는 넉넉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의 은혜입니다.
성당마다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봉사자들을 보면 그 안에 꼭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고의 영광을 자기들이 얻으려는 공명심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돌리면 얻는 명예와 은혜가 더 큰데도 그걸 모르고 이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기가 있고 분열이 있습니다.
요즘 가정에서 문제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자녀가 여럿일 때는 형제들이 서로 이해와 양보와 희생이 저절로 뒤따랐습니다. 그래야만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기 때문에 그들이 양보와 희생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고집,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형제들간에 위아래로 부딪치면서 고통을 배워야 하는데 그 수련이 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화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광야를 체험하고 고난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주일미사를 봉헌할 때만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에서 내 자신을 이웃에게 내주고 베풀어 줄 때 참다운 신앙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사순절은 교회가 의미있게 걸어가는 광야의 길입니다. 고통을 체험하여 그것을 은혜로 성화시키는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또다시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용기있게 걸어가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필요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