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본래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기름진 땅에서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에 도착해 보니 아주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흉년이 들어 이리저리 떠돌다 보니 신세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늘그막에 자식도 하나 없고 손바닥만한 밭떼기 하나 없었습니다. 참으로 외롭고 서글펐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느님을 믿고 정든 고향을 떠났던 일들이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가라해서 떠났고 오라해서 왔지만 어디 맘붙여 살만한 건더기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따라나선 것이 그저 속없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다시 부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이 별처럼 많이 불어날 것이다』
그뿐만도 아닙니다.
『나는 에집트 개울에서 큰땅 유프라테스에 이르는 이땅을 네 후손에게 준다』
너무도 엄청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성은 아주 희박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평생에 얻은 것이라곤 아들 하나였으며 그리고 살아 생전에 차지한 땅은 마누라의 무덤을 쓴 막벨라 동굴이 있는 작은 밭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언제고 그분의 약속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여늬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믿음의 결과를 현실에서만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아브라함은 좋은 모범이 됩니다. 믿음은 결코 보이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현실에서 걸어가기에는 여러가지 걸림돌들이 많게 됩니다. 믿음은 현실과 자주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으로 믿기 위해선 자신을 죽어야 합니다. 하느님앞에 굽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께서 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 모습이 변화되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봤을때 그때 예수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얼른『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하고 여쭈어 봤습니다. 너무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사실 이 변모사건은 예수님 자신에게나 제자들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은 본래 엄청난 길이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사건보다 더 외롭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 가시면 잡혀서 죽습니다. 십자가에 참혹하게 매달릴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얻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을때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죽음에 관하여 함께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마주님에게 큰 용기와 힘을 드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자들을 대표한 것으로 봅니다. 모세는 그때 홍해 바다를 건넜고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에 올라 갔던 분입니다. 그걸 보면 예수님도 죽음이라는 바다를 건너시게 되고 또 그 사건을 통하여 부활이라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으시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약속을 미리 체험하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을 꺽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나」를 당신의 아들로 딸로 부르셨기 때문에 자녀의 길을 아버지의 뜻대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에는 외로움도 있고 가시밭도 있으며 높은 산과 깊은 강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그런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는 믿음이 자주 세속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재물과 건강과 현세적인 복 뿐입니다. 병 낫고 사업 잘되며 가정 평안한 것만을 원합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목적을 바로 거기에 둘 때 그러면 십자가의 의미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세례를 받았는데 막상 신자가 되고 보니 고달픈 것이 많았습니다. 우선 낙태를 못하니까 원하지 않는 아이를 셋이나 더 낳아 자녀를 다섯이나 키우게 되었으며 또한 장사도 양심적으로 하려니까 수입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래 저래 그녀는 성당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해서 많은 어려음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럽고 시원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약속의 땅이 있고 또한 올라가게 될 영광의 자리가 있습니다. 세상은 보상해 줄 수 없는 축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이 힘들다해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아브라함처럼 또 예수님처럼 굳굳하게 걸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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