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촌 취재를 위해 일행이 서울을 떠난 것은 2월 9일이었지만 정작 르완다 난민들을 처음 만난 것은 8일 후인 2월 17일에야 가능했다. 파리와 아프리카의 관문인 나이로비를 거쳐, 다시 세스나 경비행기로 빅토리아호수를 넘는 장도에 올라 3시간여만에 탄자니아의 응가라 공항에 도착할때는 손에 땀을 쥐는 공포와 불안이 엄습해 왔다.
연일 들려오는 서방기자들의 피살소식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신변을 보장받을수 없기에 각자 조심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국제 까리따스 관계자들의 충고는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아보는 기자의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신변의 불안과 공포
더욱이 일행이 탄 경비행기가 착륙해야할 응가라공항을 내려다 보는 순간, 살아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묘한 두려움이 앞섰다. 산등성에 나있는 오솔길 같은 활주로, 관제탑이나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진흙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흙바닥이었다. 다행히 몹시 흔들리긴 했지만 아무런 사고없이 착륙하자 일행은 서로의 안전한 생명을 확인하며 안도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마중나온 탄자니아 루렝게교구 관리국장 신부의 안내를 받아 교구청으로 향하는 도중 일행은 음부바지역에 이르렀을때 제2의 르완다사태가 발발, 부룬디를 떠나온 부룬디 난민들과 르완다 내전을 피해 부룬디로 갔다가 다시 탄자니아로 건너온 르완다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솔길 같은 활주로
짐이라고는 돗자리와 거적때기와 같은 헌옷, 그리고 빈 물통 뿐이었다. 6~7세 정도의 어린이들도 모두 하나씩 빈 물통만은 생명처럼 지니고 있었고 식량은 유엔 난민위원회가 임시로 제공하는 이틀분의 식량이 전부였다. 흡사 동족상잔의 와중에서 남으로 남으로 이어졌던 6ㆍ25 피난행렬과 같은 비극을 보는듯 했다.
이튿날 빵 한조각으로 아침을 떼우고 1백50㎞의 거리를 하루종일 달려 도착한 카발리사 캠프에는 어느정도질서가 잡혀 있었다. 카발리사 난민촌은 교회가 직접운영권을 가지고 난민들을 돌보고 있는 유일한 난민촌.
운영책임자 쟈스티니안(41세)씨는 『르완다 사태가 호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돌아갔을때 신변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광란의 학살장면을 목격했던 난민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정신적 치유해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신적 치유 급선무
지난해 4월 캠프가 설치되자 하루 2~3천여명씩의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하루평균 1백20명 정도가 질병과 폭력으로 희생됐지만 지금은 질서가 잡혀 한달에 20여명 정도가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2월 17일 현재 6만5천3백여명의 난민들이 수용돼있는 카발리사캠프에는 벨기에 출신 의사 프랑소와씨가 의료활동을 책임지고 각종 질병 치료에 나서고 있다.
일행이 도착한 날에도 캠프에 수용중인 난민들이 진료를 받기위해 줄을 서 있었지만 유엔이 지원하는 의약품이 난민촌에 제대로 도착되지 않아 환자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방제활동이 잘 된 탓인지 다행히 난민들의 떼죽음을 몰고오는 콜레라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는 상태라고 프랑소와씨는 설명했다.
구호약품 공수 애로
난민촌 한켠에 자리잡은 임시병동을 방문했을때는 말라리아로 숨진 한 난민이 들것에 의해 실려가고 있었고 침상의 와중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과 부모가 사망해 고아가 된 영아들이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 풀이 죽어 있었다.
다행히 유엔난민위원회와 국제 까리따스를 통한 각국교회의 지원으로 이들 난민들의 식사는 어느정도 해결되고 있었으나 의료와 어린이들의 교육, 연료문제는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난민촌이 형성된지 1년이 지났지만 난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난민들이 식사를 위해 필요한 땔감문제이다.
난민촌을 가운데 두고 반경 수십㎞ 부근에는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산이 황폐화됐다.
아동 교육시설 전무
이러한 문제는 카발리사캠프 뿐만 아니라 유엔난민위원회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베나코 캠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난민촌의 길이가 15㎞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지역에 약 60만명의 난민들이 수용돼 있는 세계최대의 난민촌인 베나코 캠프에는 그 많은 난민들에게 제공해야할 식수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로 지적됐다. 아프리카가 겪는 시련중의 하나가 물부족인데 60여만명의 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부터 난민촌이 형성돼 어느정도의 질서가 잡히고 있는 난민촌. 그러나 이곳에도 일행이 머무는 동안 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인간의 온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았다.
내전의 와중에서 혼기를 놓친 처녀 총각 1백40여쌍을 위한 혼례식과 부모가 사망해 고아가 된 어린이들을 난민들 스스로 입양해간다는 소식 등 이러한 소식에서 일행은 르완다에도 언젠가는 평화와 희망이 깃들수 있다고 강한 암시를 받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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