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천주교회의 교회법학을 탐구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교회법에 대한 개념정립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회법의 구성
교회는 교계제도로 조직된 단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고, 보이는 단체인 동시에 영적 공동체이며, 인간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합적 실체이다(교회헌장 제8항).
교회법은 그 자연적 및 초자연적 목적에 응하여 보이는 사회로서의 교회의 고유한 조직과 통치 및 신자생활을 규율하기 위하여 하느님과 교회가 제정한 권위적 법규범의 총체이다.
따라서 교회법은 하느님의 법과 사람의 법률로 이루어져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법에 속하는 내용은 하느님이 피조물의 본성에 새겨주신 영원법의 일부를 인간이 인식하는 「자연법」과 하느님이 계시하신 영원법의 일부가 성서에 기록돼 있는 것인 「하느님의 실정법」이 있다.
또 인간의 실정법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제정한 교회의 법률과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 맺은 협약인전교조약, 그리고 종교문제에 관한 국가 법률이나 지역 교회가 그 지역의 교회법으로 준용하는 국법중의 일부가 여기에 속한다.
교회법전의 역사
2천년에 걸친 교회법전의 역사를 간추리면 크게 1~11세기, 12~15세기, 16~19세기, 20세기의 교회법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대교회법이라 할 수 있는 사도들이 정한 법규는 신약성서에 수록돼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사도시대 이후 사도들의 이름을 빌린 가짜 사도들의 법령집들이 나타났다. 이후 초세기부터 여러 지역의 개별공의회들과 보편 공의회들에서 여러가지 법령들을 제정한 법령집이 나오면서 동시에 초세기부터 역대 교황들의 교령들을 모은 법령집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이후 1140년경 그라시아노 수도자가 초세기부터 그때까지 제정된 모든 교회법규와 법령집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법령집을 만들었다. 「그리시아노 법령집」으로 불리는 이 법령집은 교회역사상 처음으로 종합 편찬된 법령집이다.
그리시아노 법령집 이후 역대 교황들과 공의회에 많은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 모든 법령집을 집대성한 교회법 대전이 1580년에 편찬됐다.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들이 갈라져 나가면서 뜨리덴띠노 공의회가 개최되어, 이 공의회 교령들을 수록한 법령집이 편찬됐으며 1865년 이후 교황의 모든 문서를 편찬한 「사도자 관보」(Acta Apostolicae Sedis)가 매년 발간되고 있다.
20세기에 들면서 과거의 모든 잡다한 교회 법령집들을 총 정리한 법전이 5권으로 1917년에 반포됐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헌장과 교령을 수렴해 개정된 교회법전이 7권으로 1983년에 반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교회법전의 구조
1983년도 새 교회법전에 수록돼 있는 법규는 다음과 같다.
△제1권 일반규범(제1~203조): 한국 민법 제1편에 대응되는 내용 △제2권 제1편 교회의 민법(제204~329조): 모든 신자들이 신분, 권리 및 의무에 관한 규정 △제2권 제2편 교회의 조직법(제330~572): 성식자들과 교계제도에 관한 규정 △제2권 제3편 수도회법(제573~746조): 수도회와 준수도회에 관한 규정 △제3권 교회의 교회법(제747~833조): 강론, 교리 교육, 학교, 출판물, 대중 홍보 수단 등에 관한 규정 △제4권 제1편 교회 성사법(제834~1165조): 7가지 성사에 관한 규정 △제4권 제2, 3편 교회의 경배법(제1166~253조): 준성사, 성무일도, 교회 장례 등에 관한 규정 △제5권 교회의 재산법(제1254~1310조): 한국 민법 제2편과 제3편에 대응되는 규정 △제6권 교회의 형법 (제1311~1399조): 형벌에 종류와 각종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 △제7권 교회의 소송법(제 1400~1752조): 민사소송, 인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에 관한 규정
교회의 보편법
교회의 보편법은 각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언어, 풍속이 각기 다른 온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지키도록 제정된 법률이다(교회법 제12조 1항 참조) 그러기에 보편법은 각 민족에게 고유한 문화 전통과 사회여건에 더 잘 맞는 구체적인 세칙을 따로 제장하도록 각 국의 주교회의에 위임하거나 허용한 사항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교회의 보편법은 지역교회 주교회의가 해당 국가의 법률이나 관습을 참고하여 그 지역교회에 적합한 규범을 제정하여야할 사항들뿐 아니라 해당되는 지역의 국법을 그 곳의 교회법으로 준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사항들도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 민법
우리나라는 옛부터 불문법(不文法)의 나라였었다고 할 수 있다. 옛날에 중국법을 이어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 중국법은 공법(公法)이 중심이었고 서양에서 처럼 체계적인 사법(私法)의 발달을 보지 못했다.
그 결과 중국의 여러 공법전을 모방한 법전들이 편찬된 일은 있지만 사법전의 편찬은 없었고, 다만 각종의 법전 속에 사법적 규정이 단편적으로 흩어져있을 뿐이였다. 따라서 민사에 관한 다툼은 원칙적으로 각 지방의 관습과 법관을 겸한 지방 행정관의 재량으로 해결됐다고 볼수가 있다.
1910년에 이른바 한일합방으로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 일본 제국은 곧 일본의 법률을 우리나라에 시행했으며 비로서 1912년에 우리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민법전을 접하게 됐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우리나라는 1948년 새로운 공화국이 세워졌고 같은 해 민법전의 기초에 착수, 1953년에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1958년 2월 22일에 법률 제471호로 민법이 공포되어,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후 우리의 민법전은 1990년 1월에 이르기까지 7번 개정됐다.
한국지역 교회법
1784년이래 백년동안 모진 박해를 당한 한국교회는 1831년에 조선대목구가 설정된 다음에도 실질적으로 지역 교회법의 필요성이 없었다. 1866년부터 10년간에 걸친 병인박해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신앙의 자유를 얻게되고 정상적인 교회 활동과 더불어 교회법의 적용이 시작된 것이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천주교회는 1917년 과거의 모든 잡다한 교회 법령집들을 총정리하여 5권의 교회법전으로 반포되자 이를 기초로 1930년에 「한국천주교 공용 지도서」(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편찬작업에 착수, 조선 대목구 설정 1백주년이 되는 1931년에 간행했다.
이 「한국천주교 공용지도서」는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라틴어 법전으로 총74개조 530개항으로 편찬된 최초의 한국지역 교회법전이다. 당시 우리나라 교회는 서울과 대구, 원산 등 3개 대목구와 평양과 연길의 2개 지모국가 설정돼 있었고 신자수는 10만명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고, 교회는 음성적 탄압을 받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한국천주교공용지도서는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해방과 함께 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크게 변화되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 공용지도서도 1958년 교회의 변화에 따라 조금 개정됐다.
이후 1962년 한국 천주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되었고 세계 교회 역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치루면서 다각적인 교회 쇄신을 도모했다.
그래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1974년 가을 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공용지도서 개편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필자와 7명의 사제를 위원으로 위촉했다.
한국 지역교회법 편찬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교회법전이 1983년에 반포됐고, 또 한국 교회는 1984년에 2백주년을 경축하여 사목회의를 개최했다.
이 역사적인 기회에 한국 주교회의는 교회법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동시에 한국 교회를 위한 새로운 지역 교회법을 제정하는 작업을 교회법위원회에 맡겼다.
이로써 근 20여년만에 탄생한 것이 「한국 천주교사목 지침서」(Directorium Pastorale Coreae)이다. 한국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한국인 사제들이 새 교회법전과 한국교회 2백주년 사목회의 의안의 내용을 종합하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한글로 편찬한 한국지역 교회법전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3개의 대교구와 12개의 교구 및 1개의 자치 수도원구로 이루어져 있고 신자수는 3백만명이 넘었다. 다만 평양교구와 함흥교구 그리고 덕원자치 수도원구가 공산 치하에서 이름만 보존되고 있음이 가슴 아프다.
사목지침서 편찬의 작업
한국 주교회의는 교회법전이 반포된 1983년 봄 총회에서 교회법전 번역위원회를 설치했다. 교회법전 번역위원회는 각 위원이 분담하여 번역한 것을 1983년 5월부터 매일 3일씩 합숙하면서 공동작업으로 교정하였고, 1986년 5월에 교회법전 번역을 마쳤다. 이 번역은 사도좌의 인준을 거쳐 한국교회역사상 처음으로 1989년 11월에 출판됐다.
바로 이어서 교회법전 번역위원회는 교회법위원회로 재편성하고 1986년 6월에 신축 이전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매달 3일씩 합숙하면서 사목 지침서 시안을 분야별로 작성하여 되는대로 주교회의에 올렸다. 교회법위원들은 한국 지역 교회법을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초안 작을 분야별로 분담하는 동시에 주교회의 산하의 각 위원회와 단체에도 해당분야에 대한 법규정 초안의 작성을 의뢰했다.
주교회의에서는 이 시안을 검토하고서 이를 확정짓기 전에 되도록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입법 예고 형식으로 1988년 3월 춘계총회를 마치면서 일부를 발표했고 1989년 3월에는 나머지 부분을 합쳐서 책자로 발간해 전국에 배포했다.
주교회의는 이 시안을 각 교구별로 연구 검토, 교육한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 교회법위원장이 편찬 작업을 끝마치도록 했다.
교회법위원회는 1992년 주교회의 봄 총회에 사목지침서의 최종 시안과 영문 번역판을 제출, 주교회의는 이를 확정하여 사도좌에 인준을 신청했다.
사도좌는 이에 95년 1월말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를 인준하는 서한을 보내왔고 주교회의는 빠르면 금년 봄 총회 때 이를 시행 공포할 예정이다.
한편 필자는 8백쪽 분량의 사목 지침서 해설서까지 준비해 놓고 주교회의의 공포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목 지침서의 법원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의 규정들이 근거하고 있는 원천들은 크게 「옛 규정들」과 「새 규정들」 「한국교회의 규정들」등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옛 규정으로는 1917년에 반포된 교회법전과 1931년에 제정된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를 들 수 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들과 이후의 사도자 문헌, 1983년에 반포된 교회법전이 새 규정에 속한다.
그리고 한국교회 규정으로는 한국 천주교 2백주년 사목회의 의안집과 1986년에 제정된 전국 공용 교구 사제특별권한, 한국의 국법 특히 민법이 해당된다.
사목지침서의 내용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총 6편 256개조로 구성돼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제1편 하느님의 백성, 제2편 전례와 성사, 제3편 사목은 교회법전의 내용을 압축하고 해당되는 사목회의 의안을 수렴해 놓았다.
제3편 제3장 특수사목, 제4편 선교와 신자단체, 제5편 사회는 한국 천주교 2백주년 기념 사목회의의 의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제6편은 교회법의 준용하는 한국의 국법 중 자주 참고될만한 법규를 발췌 수록해 놓았고, 부록으로 주교회의 정관과 군종교구 정관이 첨부돼 있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한국의 사제들이 사목 지침서만 가지고서도 일상적 사목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편찬돼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사제들은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교회법전이나 한국의 법전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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