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씻김의 봉사를 받은 제자들은 약간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식탁에 자리잡았다. 식탁에는 율법에서 규정한대로 채소가 있었고 소스그릇이 놓여있었다. 주인되는 사람은 우정의 표시로 빵조각과 채소를 소스에 적셔서 회식자들에게 건네주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다.
지금 이 식사차례는 전식(前食)이랄 수 있는 첫번째 차례였다. 예수께서는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하여 빵을 적시어 회식자들에게 건네주신다.
과월절 식사를 할 때 예수는 ㄷ자형으로 된 삼면식탁(三面食卓) 가운데 자리에 앉았을 것인데 유다스는 세번째 상 맨 윗자리에 있었다(대목317참조). 그러니 예수께서 유다스에게 빵을 적시어 건네주기가 쉬웠다.
예수께서 발씻음의 절차를 행하시고 그 뜻을 설명하실 때(대목319참조) 『(너희)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배반자 유다스에 대한 암시를 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성서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하느님의 뜻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예수께서는 유다스의 배반을 감지하시면서 마음이 몹시 산란하셨다. 그래서 유다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그것은 극진한 우정의 표시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의 뜨거운 우정을 받고도 유다스는 세속적인 욕망에 오래전부터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 갈 길을 바꾸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끝내 돌아서지 않는 이 배반자에게 실망하셨다.
이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성서에 기록된대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알리고 또 이러한 배반자는 앞으로 살아갈 교회공동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두기 위하여 유다스의 정체를 공개해야만 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제자들은 이 말씀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께 대한 믿은 이 확고하지 못했던 터라 그「한사람」이 나일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 버려야만 했다. 그래서 각기 물었다. 『그 사람이 저입니까. 설마 저를 가리키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유다스도 능청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저입니까』. 예수께서는 낮은 소리로 『그래 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제자들은 이것을 듣지 못하였다. 열두제자들의 장이었던 베드로는 누가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인지를 꼭 알아야만 했다. 그는 주님 건너편에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주님 오른쪽, 그러니까 주님 품앞에 자리하고 있는 요한과도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에게 눈짓으로 주님께 여쭈어보라고 하였다. 요한은 고개를 돌려 『주님, 주구입니까』라고 여쭈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시어 주는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빵을 적시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스에게 건네 주셨다. 유다스는 이 사랑의 빵을 받아 먹자 사탄의 흉계를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예수께서는 유다스에게『어서 네 할 일이니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계획한 일을 빨리 실천에 옮기라는 말씀이었는데 제자들은 유다스가 사도단의 살림을 맡아보기 때문에 시장을 보아오라는 말씀으로 알아 듣기도 하고 명절을 지내는 관습대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러 가라는 말씀으로 알아 듣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언제, 왜 유다스를 제자로 뽑았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그가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미리 막지 않은 것에 우리는 의아심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구세사의 신비이다. 아담이래로 모든 사람의 악을 미리 막지 않은 것은 하느님은 사람의 불행을 없이 하시지만 사람의 자유에서 나오는 율리적 동기유발도 막지 않으신다는 사실때문이다. 자유행위의 선행을 높이 사기 위해서이다.
유다스의 이스카리옷이란 이름의 뜻은 「사기한, 위선자」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유다스가 왜 주님을 배반할 동기를 가졌을까. 그것은 세속적인 동기에서이다. 주님을 세속적인 위안으로 따라 다니다가 끝내 실망했고 예수가 율법을 경시하는 인물로 단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똑똑하고 유능한 유다인이었다. 예수께서도 유다인들을 설득하는데 제자들 중 한 사람정도는 유다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성서의 말씀을 이룩하는 나쁜 도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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