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천주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봄에 있어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 사목신학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분수령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것은 공의회를 통하여 사목신학의 개념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이로인하여 전개되고 있는 사목의 모습이나 사목신학의 연구방향이 크게 달라지도록 요청받고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사목신학의 개념정립을 먼저 시도하고, 그 본질과 기능을 알아본후 현황을 단편적이나마 살펴보고 나름대로의 바람을 말하고자 한다.
사목신학이란?
사목신학이란 당연히 사목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사목이라는 개념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하여 크게 달라졌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공의회는 여러 문헌을 발표하는 가운데 사목헌장을 내 놓으면서 이례적으로 그 헌장의 명칭에 대해 자세한 각주를 붙이고 있다.『이 사목헌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지만 하나로 묶어진 헌장이다. 「사목」헌장이라 부른 이유는 이 헌장이 교의상 원칙을 따라 현대세계와 현대인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천명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첫째 부분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계에 관한 교회의 교의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교회의 태도설명을 전개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현대 생활과 인간 사회의 여러가지면, 특히 현대에 다급한 문제와 관계들을 깊이 고찰한다』.
이렇게 각주를 붙여야 했던 까닭은 그 이전까지 흔히 갖고있는 사목에 대한 개념과는 다른 개념을 갖고 사목헌장을 내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사목(Pastora)이라는 말은 목자를 의미하는 라틴어pas-tor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이로인해 이 말은 목자가 자기 양을 위해 하는 일을 떠오르게 한다. 따라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사목신학은 영혼을 돌보는데(Cura anima-rum) 있어서 사제가 하여야 할 임무와 의무 그리고 책임에 대해서 논하는 학문이라 정의되었으며, 사제가 자신의 일에 있어 성공할 수 있도록 그 방법들을 연구하고 논의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사목개념은 한때 우리 교회를 지배하고 있던 이원화된 교회론에 근거하고 있다 하겠다. 이원화된 교회론이란 마치 학교에 스승이 있고, 제자가 있듯이 교회 안에서도 성화시키는 자가 있고, 성화되는 자가 있으며, 다스리는 자가 있고,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 있으며, 성사을 베풀고 은총을 나누어 주는 자가 있고, 성사를 받고 은총을 받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성직자와 평신도를 이렇게 구별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목을 성사 중심으로 또한 성직자 중심으로 이해했던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교회의 직무와 그 생활에 대한 과장된 성직자 중심적인 사고가 더욱 커져서 마침내 개개의 성직자를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할을 역사적으로 지속시켜 나가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서 성직자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내지는「하느님이 파견하신 충독」혹은「모든 은총의 통로」라든가「양떼를 돌보는 목자」등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직자 앞에 모든 평신도들과 교회 모임들은 성직자가 이끄는 대로「끌려가고」,「지도 받으며」,「정화되어야 하는」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에 깊이 젖어 있던 상황에서「현대세계의 교회」에 대한 헌장을「사목적」이라고 명명하기까지 많은 토론을 겪어야 했었는데 어떻든 공의회는 사목헌장을 반포하면서 사목의 개념을 확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목을 연구하는 사목신학을 『늘 새롭게 변화하는 그 시대의 상황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자기완성을 이루어 나가는지를 다루는 신학의 한 분야』 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사목신학을「실존적 교회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목신학의 본질
실존적 교회론인 사목신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교의신학에서 다루었던 것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는데 그중 중요한 사항들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사제 한사람 한사람이 하는 사목활동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에 의해서도 계속 이어져가는 것이다. 즉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사업을 계속하도록 교회에 맡기셨지 성직자에게만 맡기시지는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사목자라는 말조차 본래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고, 성직자들에게는 단지 비유적인 의미로만 쓸 수 있는 것이다.
②그러므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교회생활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직자의 역할, 즉 사목활동과 그저 지도받고 돌봐지고 따라가기만 하는 양떼들의 수동적인 역할로 이등분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목신학에서는 마치 교회생활이 각 사제의 활동을 다스리는 온갖 규칙이나 규범 그리고 세부지침에 전적으로 달여있는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것이다. 분명 역사신학이나 교의신학에서는 교회의 본질과 역할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구원사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이러한 구원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사목신학에서는 교회의 각기 다른 온갖 기능을 대표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두루 포함하는 총체적인 교회를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③하지만 교회는 자신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고, 그 맡은바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마침내 완성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하는 현대사회구조에 대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무류적인 가르침을 전혀 받고 있지 못하다. 분명 현대사회는 교회가 자기 완성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 한낱 스쳐가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 스스로 원하셔서 명하신대로 이루어진 사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와 같은 늘 새롭게 변화하는 그 시대의 경향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이 혹은 거의 받지않은 듯이 행동해서는 안되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 많은 문화적, 사회화적 그리고 미학적인 변화들을 그저 마치 무대장치가 바뀌는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아 그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조차 항상 똑 같은 전례서를 갖다 놓고, 불변의 규칙에 입각해서 그와 같은 변화들과는 손가락 하나 닿아 본일이 없다는듯이 요지부동한 행동만을 고집해서는 안되는것이다. 교회의 현재생활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가 그러한 시대상황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결코 무류성을 갖고 꿰뚫어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는 지금 여기에 현존하면서 자기완성을 위한 사업을 계속해 나가기 전에 이러한 현상을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를 다룰 수 있는 분야는 사목신학인 것이다.
한국교회의 상황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해서 사목신학의 개념과 내용이 크게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신학적인 깊은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사목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시는 것이고 성직자는 자신의 신분과 역할로 사목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며 평신도도 같은 이유에서 자신의 몫을 해야 함을 알지 못하고, 사목이란 단지 사제들의 직무수행으로만 이해하고, 심지어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란 수동적인 대상으로 향하여 쏟는 성직자들의 사목활동만이라고 오해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사목신학연구도 성직자에게 실제의 사목활동에 필요한 지침들을 제공하거나, 사목활동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머물러 있는 듯 하다. 또한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가 있기는 하나 신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즉 현 세계의 온갖 경향들과 구조들을 이해하고 있을 때만이 교회는 정학하고 올바른 전략을 세워서 세상에 대해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잘 완수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인데 사회학적인 접근을 넘어 신학적인 연구가 더욱 요구된다 할 것이다.
전망
요새 한국교회는 2000년대를 맞아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 위해 다각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각 본당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전환은 우리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본당신부를 정점으로 하는 단일 기능하에 있던 본당이 좀 더 유연성을 갖고 다양화되고, 세분화된 현대의 사회현실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사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고, 이에 따른 사목신학의 연구가 전개되리라 기대된다.
그렇다고 소공동체 운동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외국의 선례를 볼 때 그 안에는 많은 독소가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자기 완성을 이루기 위하여 하는 활동이 사목활동이라면 당연히 교회를 구성하는 무두가 함께 사목에 임해야 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 예견되고 소공동체 운동이 기폭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소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본당간의 확고한 경계를 따지고, 그 안에서 사목권을 위임받은 본당신부가 일정한 구역내의 신자들을 사목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떠나야 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본당내에 또다시 구역 또는 반이라는 경계를 땅 중심으로 세워 놓으려 하고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사고에 의해 사목현실이 바뀌게 되든, 사목현실로 인해 생각이 바뀌게 되는 우리 교회에 사목적인 변화가 일어나려하고 있음을 보면서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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