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고기를 먹는 과월절 식사는 끝났다. 남은 일은 감사의 축배를 드는 세번 째 술잔만 남았다. 이 식사 예절이 끝나면 회식자들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남은 음식을 먹고 마실 수가 있다. 제자들은 끝나기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마르14,22:마태26,26).
이때 예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려는 하느님과도 같이 중대한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신중하고도 엄숙한 태도를 취하면서 명상에 잠기고 있었다.
그리고 빵그릇에서 빵을 집어들고 축성하신 다음 조각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제자들은 각별한 우정을 느끼며 그것을 받아 먹었다.
조금후에 예수께서는 술잔에 포도주를 가득 채우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각 사람에게 돌리시며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니라, 너희는 나를 되새기며 이 예를 행하라』.
제자들은 서로 우의를 다지며 술잔을 받아 차례차례 마셨다. 이렇게 주님이 빵을 당신의 몸으로 나누어 주고 포도주를 당신의 새 계약을 맺는 보증으로 주신 것은 단순히 식사를 마감하는 절차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행동이며 말씀이다. 태초에 성부이신 하느님이 하느님으로서 자연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이번에는 성자이신 하느님이 인간으로서 거룩한 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다.
두 창조의 경우 창조의 힘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드러났는데 첫 창조에서는 생명이 돋아나는 힘을 발휘하셨지만 두번째 창조에서는 시들어진 생명을 되살리는 능력을 발휘하셨다. 첫번째 창조에서 생겨난 생명을 받은 생명체들은 그 생명을 이어가는 사명을 받았고 두번째 창조에서는 끊이없이 생명의 활력소를 쏟아 붓는 방법을 개발하신 것이다. 이것은 생명을 거룩하게 하는 일로서 후대의 신학은 이 일을 성사(聖事)라고 이름하였다.
제자들은 사도로 임명을 받을 때 무슨 사명을 행할 것인지를 몰랐다가 주님이 승천하신 후 약속의 성령을 받고 나서 그 사명을 깨닫고 일에 착수하였다. 그 사명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를 세우는 일과 그 교회안에서 주님을 되새기며 주님의 성찬식을 행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주님과 작별한 후 먼저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일과(사도1, 12~14) 성찬예식을 식사형식으로 하는 전례(典禮)였다.
『그들은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2, 12).
빵을 주시며 당신의 몸으로 받아 먹으라는 명령, 포도주를 주시며 당신의 피로 받아 마시라는 명확한 말씀, 빵이 당신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당신의 피가 되는 것, 이것은 하느님 나라에서만 이루어지는 신비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빛이 있어라」라고 하신 말씀으로 빛이 생겼다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하느님의 말씀이니까 그렇게 된 것뿐이다.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것은 내 몸이요. 내 피로다』라고 하셨으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대로 믿고 받아 먹고 마시는 것 뿐이다.
『나를 되새기며 이 예를 행하라』고 하셨으면 그대로 행하는 것뿐이다. 사도들은 그렇게 하였다. 네 복음서보다도 먼저 쓰여진 바오로의 고린토 전서(52~55년사이)는 제일 먼저 이 전례의 실행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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