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과거사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쓴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 과거사이 모든 결과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어쩌면 그 영향이 아직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가톨릭 교회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변혁을 가져왔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역사적인 주제」로 다룬다는 것은 때이른 감이 없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일단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최의 배경과 과정을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위상을 일별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요한 23세 교황(Johannes, 1958~1963)에 의하여 소집됨으로써 1962년 10월 개최되어 1965년 12월에 폐회한 제21차 세계공의회이다.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 등에 관한 헌장을 반포하고 이탈리아왕 빅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 2세의 로마 점령에 의하여 무기한 휴회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거의 1백년동안 세계공의회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교회가 대처하기 위하여 레오(Leo) 13세(1878~1903), 성 바오(St. Pius)교황 (1903~1914), 비오 11세(1922~1939), 비오 12세(1939~1958)들의 회칙들만이 반포되었을 뿐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Bergamo)지방의 작은 마을인 솟또 일 몬떼(Sotto il Monte, 산 아래)에서 소작농을 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출생하여 안젤로 쥬셉뻬 롱깔리 (Angello Giuseppe Roncalli)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1세때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1904년 사제품을 받고 주교의 개인비서로 있으면서 신학교에서 교회사, 호교론, 교부학을 강의하였다.
그후 교황청에서 근무하다가 1925년부터 불가리아에 교황 순찰사, 희랍, 터키, 프랑스 주재 교황사절 및 교황 대사로 파견되어 외교관 생활을 하였다. 1953년부터 베네치아 총주교로 사목활동을 하면서 용기있는 사목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특히 외교관으로서는 여러 나라에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되고 있는데 교회는 제자리 걸음을 하며 제 역할을 찾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8년 10월 28일 롱깔리 추기경이 요한 23세라는 교황 명으로 비오 12세 교황을 계승하였다. 갈릴레아의 가난한 어부었던 베드로 사도를 베르가모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인 롱깔리가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77세라는 연만한 그의 나이 때문에 「집지키는 사람」쯤으로 생각되었지만 그는 현대 교회역사에 가장 위대한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1870년 이래로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바티칸 울타리를 벗어나 로마의 레지나 첼리(Regina caeli, 하늘의 여왕)교도소를 방문하여 수감된 수인들과 대화하고 기차로 이탈리아의 로레또(Loretto)와 아씨시 성지순례를 하였다.
1959년 1월 25일 바울로 사도 개종축일날, 요한 23세는 「로마교구의 시노드」「교회법의 개혁」「세계공의회 소집」계획을 발표하였다.
특히 요한 23세 교황의 세계공의회 개최 소식은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특히 그리스도교 초기에 열린 공의회들을 예로 들면 과거의 공의회는 그 때마다 처리해야할 교회의 어려운 문제, 즉 당시 문제가 된 이단에 대응하고 신앙을 정의하며 명확하게 하는 것이 공의회 소집의 계기가 되었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 시대의 필요에 응하고 적합한 방법으로 교회규정을 적응시켜 가톨릭 신앙의 발전과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의 윤리적 쇄신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교황이 소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의회에 참석하게 될 모든 교부들의 전체적인 협의를 가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였다. 사실 공의회 소집 당시 교회내부에 이단이나 분열이 있었던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 23세 교황은 혼란을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소극적인 사목보다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와 교회가 발을 맞추고 교회의 활동영역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향으로 교회를 나아가게 하였다. 비록 교황이 공의회에서 무슨 문제를 다룰 것인지 정확한 세부 계획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교회의 혁신, 그리스도교의 일치, 현대세계에 대한 교회의 적응(아죠르나멘 또Aggiornamento)이라는 대명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은 1959년부터 공의회를 준비토록 하여 이에 적합한 주교들과 신학자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의회에서 다루게 될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 자료들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1960년 6월 5일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 개최를 위한 중앙준비위원회 및 부속위원회와 사무국을 설치하여 자신이 중앙예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2개의 준비위원회가 설치되어 이 가운데 9개의 위원회가 교황청의 각 성성(聖省)과 긴밀한 협의를 하였다.
이 준비위원회에서 67개의 토론 주제를 준비하였다. 1962년 7월에는 교황회칙 「회개하기 위하여」(Paeniten?tiam agere)를 반포하여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회개하여 쇄신할 것을 촉구하였고, 이 「회개와 쇄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본정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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