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찾는 자녀들의 마음은 언제나 항상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요즘 명절때에 고향을 방문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차를 손수 운전할 경우 평시의 근 세배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그 길로 지루하고 따분한 여행길이지만 신바람이 납니다. 지루한 줄을 모릅니다.
고향이 좋은 것은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누울 자리가 있으며 수고하지 않아도 그것엔 먹을 음식이 있습니다. 살기가 외로웠던 자들은 거기서 힘과 위안을 얻으며 살기가 또 좋았던 자들은 거기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고향은 그래서 언제나 따뜻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반도에서 헤매일 때 그들은 살기가 참으로 팍팍했습니다. 약속의 땅이라는 곳이 걸어서 나흘이면 도달할 수 있는데도 거길 못 들어가고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외롭게 한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불평도 많이 했고 싸움도 많이 했으며 하느님께 죄도 많이 졌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그들이 약속의 땅에 도착했을 때는 실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이젠 누울 자리가 있고 편하게 쉴 자리가 있었습니다. 땅도 절도 없이 남의 나라 땅에서 빌어 먹고 헤맸던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천국이요 낙원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여호 5,9ㆍ10~12)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감격의 첫 과월절을 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과월절은 이스라엘의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그들에겐 가장 큰 명절입니다. 과월이란 다시말해 「빠스카」를 말합니다. 죽음이 그들을 건너간 사건, 즉 양의 피를 문에 바름으로써 아들을 잃는 대 참극을 건너갑니다.
여기서 우리도 건너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버지께로 건너가면 바로 지옥 같은 생활을 우리가 건너가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복음이 그 내용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복음에 등장되는 작은 아들은 나름대로 포부가 있고 꿈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아버지의 돈으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술과 창녀와 노름으로써 다 탕진해 버립니다. 그 숱한 재산을 일시에 날려 버리고 알거지가 됩니다. 이제 끝장이었습니다. 완전한 파산이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돈을 다 탕진했지만 그러나 그 아버지께만은 희망을 걸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부모는 자녀를 내 쫓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잘못했다고 두 손 빌며 들어오는 아들을 난 모른다하고 외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갑니다. 염치불구하고 돌아 갑니다. 머슴으로라도 좋으니 아버지 집에 살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 돌아 갑니다.
그런데 묘한 일입니다. 작은 아들이 생각할 때 『넌 내 아들이 아니다』하시며 내쫓으실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그 못난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아버지께서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그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이전에 뵌 일이 없습니다. 말썽꾸러기 아들이 돌아왔다고 큰 잔치까지 베푸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그 죄의 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께로 온전하게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빠스카의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건너가신 사건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은총의 생활로 직접 건너가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건너 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꽁꽁 묶고 있는 어떤 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매섭게 잘라 버려야 합니다. 하다못해 손가락이라도 자를 만한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의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서울에서 승용차를 탔는데 마침 산부인과 의사의 차를 빌어 타게 되었습니다. 전 그때 그가 산부인과 의사라해서 마음에 좀 긴장이 되었습니다. 저 사람이 분명히 낙태 수술을 밥먹듯 할 사람인데 어떻게 그 무거운 대화를 차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세상 돌아가는 얘기만 하면서 그 문제는 덮어버리려고 하자 뜻밖에도 그 쪽에서 먼저 얘기를 껴내더니만 속시원한 고백을 털어놨습니다.
자기는 산부인과를 선택할때부터 그런 수술은 안하기로 작정을 했답니다. 가끔 동료들이 빌딩을 짓는 것을 보고 수술이 과연 돈이 크구나 라는 생각은 가졌지만 그러나 조금도 부러워한 적이 없으며 또한 자신의 행위를 후회해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시원했으며 하늘 아래 세상 떳떳하니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끊고 올바른 삶의 길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주 돈에 묶이고 일에 끌려 다니며 술에 젖거나 노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쾌락에 자신의 인생을 가두기도 합니다.
사순절은 그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새 생활로 돌아서는 시기입니다. 돌아설 때 우리는 부활의 참 생명을 참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 갑시다. 그 길은 행복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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