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내전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참상을 빚고 있는 르완다문제를 푸는 열쇠는 무엇일까. 일행이 르완다 난민촌을 취재하면서 간직했던 최대의 관심사가 이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이었지만 르완다 사태는 그야말로 실타래처럼 엉켜있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끝없이 반복돼온 민족간의 갈등은 그 표면적 이유일뿐 르완다 사태의 이면에는 그보다 더 어려운 난제들이 지금의 이 비극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경제적으로 착취하며 지배해온 서구 식민지정책, 종족간의 갈등을 부추겨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얻어내려했던 위정자들, 바로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르완다사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엉킨 실타래같은 현실
특히 대부분의 아프리카가 그러하듯 서구열강에 의해 르완다도 예외없이 강점되고 분할되는 아픈 역사를 경험해야 했다. 처음에는 벨기에 지배를 받다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르완다. 그 와중에서 르완다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국경선이 그어지게 되고 민족분규가 시작된 것이다. 혈연과 지연, 문화 운명공동체라고 규정되는 민족에 대한 아무런 배려없이 임의로 그어진 국경선은 당연히 분쟁의 씨앗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분쟁의 씨앗 「국경문제」
아프리카 지도를 펼쳐들면 가장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서구열강 의해 그어진 직선의 국경선임을 인식할 수 있듯 아프리카의 비극은 이미 그때부터 잠재돼 있었다.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지배하다가 불씨만 남겨두고 떠나버렸고 그 이후 르완다는 단한차례의 평화도 없이 분쟁의 소용돌에 휘말려야만 했다.
그 와중에 지난해 4월 르완다의 주베날 하비아리마 대통령과 부룬디의 시프리엔 온타리아미라 대통령이 동승한 비행기가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공항 착륙직전 폭발해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두 국가의 대통령은 다수 종족인 투치족이었지만 국가를 지배하는 실권자인 군부는 소수족인 투치족이었기에 대통령 피살과 함께 다수족인 후투족은 투치족에 의해 르완다를 떠나야 했다.
권력욕에 빠진 정치인
물론 이전에 후투족은 소수 투치족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해왔기 때문에 보복을 피해 르완다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태의 원인에는 르완다를 지배해온 정치인들의 책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적인 예로 르완다를 떠나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유학중 내전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유학생들은 『국민의 대부분은 어느 종족이 정권을 잡든 관계없이 평화롭게 살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은 종족간의 갈등을 이용,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지도자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종족의 분열을 유도하고 급기야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을 난민으로 전락시킨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르완다의 이런 상황에서 르완다 국민의 절반이 넘는 신자들을 사목하고 있는 가톨릭교회도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 르완다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각이다.
가톨릭교회 역할 미흡
종족간의 갈등이 내재해 있을때 또 정치인들이 종족간의 갈등을 정치에 악용할때도 교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동조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르완다에서 25년간 사목하다 내전을 피해 케냐로 피신해 온 이본 신부는 『르완다교회를 이루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도 이러한 문제에 휘말려 종족별로 분리돼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교회도 민족의 이익앞에선 아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이본 신부의 지적은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중요한 경험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르완다에서의 이 경험을 얻기 위해 수십명의 주교와 성직자를 잃어야 하는 대가를 치른 셈이다.
성직자 주교 다수희생
더욱 주목해야할 것은 르완다사태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오른 부룬디도 르완다와 똑 같은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행이 탄자니아의 옹가라 공항에 도착하던 일요일인 2월 13일, 수백명씩 행렬을 이뤄 탄자니아 국경선을 넘어온 부룬디 난민들을 만날수 있었다.
목에는 하나같이 묵주를 걸고 있었던 난민들은 최기식 신부와 이본 신부를 만나자 길잃은 양떼가 주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와 하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양떼같은 난민들 행렬
주님의 날에 조국을 떠난 사람들. 탄자니아의 루렝게 교구청앞에서 만난 부룬디 난민들은 부룬디를 떠나 오기전에 함께 미사를 봉헌했을 정도로 돈독한 신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다.
전세계 모든 눈이 미국CNN의 뉴스방송의 카메라 렌즈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르완다 난민들은 언제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CNN방송의 초점에 따라 떠나갈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직도 르완다 내전은 끝나지 않았는데 국내적인 흥미거리에 따라 이 문제가 풀어지지 않고 묻혀버린다면 르완다 부룬디의 대부분을 이루는 후투족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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