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절 식사를 먹는 이 밤은 악마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밤, 사탄이 하느님의 일을 망가뜨리려고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그 일을 실행에 옮기려는 찰나에 와 있는 맘이다. 그 일은 이미 시작되었다. 배반자 유다스가 공동체를 떠나 스승 예수를 원수들에게 넘기려고 어두운 밤을 달려 나아갔다.
예수께서는 이제 곧 그들에게 잡혀 혹독한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다. 벌써 이전에 이 일을 예고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성서의 예언대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진작 그 일을 바로 눈앞에 둔 이 순간에 예수께서는 극심한 고독감을 느끼고 계셨다. 지금까지 모아 들였던 사랑하는 제자들마저도 예수의 극형에 연류되지 않으려고 떠나 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면서 즈가리야 예언서를 인용하셨는데 그 예언은 하느님이 못 된 목자를 견책하는 예언이었다. 「내가 이제 한 목자를 세우리니, 그는 양을 돌보지도···찾지도···고쳐주지도 않고 오히려 살찐 놈을 잡아···먹어치울 것이다···내가 이제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는 흩어지리라.」(루가11, 16~17:13, 7). 이 예언은 본래 패역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한 말인데 예수께서는 그 운명을 대신 짊어지신 것이다. 그 방법만이 인류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목에서 예수께서는 목자의 타격으로 인한 양떼들의 흩어짐보다는 그들을 다시 모으는 계획이 중요하였다. 그 일은 부활이라는 승리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는 오늘 밤 나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나는 다시 살아 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갈릴래아는 예수의 구세사업 전도가 시작된 곳이며 그곳에서 마감할 곳이다. 거기서 흩어졌던 제자들을 다시 모으겠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공동번역은 「너희는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안이하게 번역했지만 본문대로는「너희는 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걸려 넘어질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 뜻은 예수가 걸림돌이 되어 제자들이 그 돌에 걸려 넘어간다는 뜻인데 성서에서는 넘어지는 자가 상대를 오해 또는 곡해해서 그를 반대하거나 떠나가버리는 것을 말하는 종교적인 뜻을 가진다.
제자들의 넘어짐은 스승 예수에 대한 메시아관이 약한 데 기인하고 그 대표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과신이 그 원인이었다. 베드로는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주님은 오늘 밤 따라 섭섭한 말씀만 하신다고 생각하였다. 조금 전에는 주님이 가는 곳에 자기들은 오지 못할 것이라고 허셨다. 그 때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고 예수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너는 지금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고(요한16장5절에 그 목적지를 밝힌다)「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겠습니다」라고 장담하였다. 지금 제자들이 다 걸려 넘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또 다시 장담하고 나섰다. 「모두가 주님을 버리고 떠나가 버려도 저만은 주님을 따라 감옥도 좋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같이 가겠습니다」
베드로는 기분으로는 물 불 가리지 않고 주님을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구세사업의 길을 따르는 것은 인간적인 용기만 가지고는 해 낼 수가 없다.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희를 곡식 까부르 듯 마구 흔들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 오거든 네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 그런데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정말 잘 들어 두라. 너는 오늘 밤 새벽 닭이 두번 울기전에 나를 모른다고 세번 부인 할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힘주어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노라고 장담하였고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말을 하였다.
그들은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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