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대내외적으로 역사적인 큰 의미와 가치를 남겼다. 이 공의회로 말미암아, 제1차 바티칸공의회처럼 유럽의 선교주교 단만이 참석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주교들이 참석함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유럽문화의 한 부문이나 종교로서가 아니라 세계교회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공식적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근 4백여년 동안 트렌트 공의회의 기본적인 정신 토대위에서 생활해왔는데, 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적으로 역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요한 23세가 바랬던 것처럼 교의적 공의회가 아니라 특히 사목의 쇄신을 지향한 사목적인 공의회요 개혁공의회였다.
16개의 교령이 발표되었지만 교리 결정은 하나도 없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요한 23세의 공의회 정신을 계승하여 공의회를 이끌었다. 그래서 그의 성지순례여행(1964년 1월 4~6일)에서 동방교회 총대주교들을 만났고 정교회의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가 바티카을 답례방문(1967년 10월 26~28일)하는 등 교회일치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현대세계 적응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교회법 개혁위원회, 전례개혁 위원회, 메스미디어 위원회 등 필요한 조직을 보강하였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급변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과제와 도전앞에 서게 하였다. 교회 내적으로는 쇄신을, 새로운 세계에는 적을 추구하면서 인류에게 봉사하고 이 세계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는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
쇄신과 적응(Aggiorna-mento)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 회기를 이끌어 온 기본적인 정신이었다. 성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하며 「시대의 징표」(Signum temporis)를 깨닫고 현대세계에 적응하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간을 구하시고자 하느님으로서 인간으로 강생하셨듯이 교회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 교회의 본성을 훼손하지 않고 그 시대와 지역의 문화에 「강생」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 그리스도교 토착화의 원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쇄신과 적응이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지? 오늘날 우리민족과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우리 교회의 역할, 즉 「시대의 징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2천여년 교회역사에서 성직자, 수도자들의「복음적 청빈」은 항상 쇄신의 첫 목표였다. 세속적인 명예나 터무니없는 권위에 연연해 하는 것도 결국은 청빈의 정신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천주교회 쇄신의 순위를 정한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훌륭히 마무리하고 이 정신으로 교회를 쇄신하고자 전력하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고통을 당하였던 바오로 6세 교황의 정례식을 보고 느낀 이야기로 교회사 지상신학장좌를 마치고저 한다.
1978년 바오로 6세 교황의 장례식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로 아주 감동적이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에 주님께 돌아가신 그분은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아주 검소하게 치르도록 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덤까지도 아주 소박하게 하도록 당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고인의 뜻을 존중하여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 광장바닥에 양탄자 한 장을 깔아 그 위에 아무런 칠도 하지 않은 생나무 관(棺)을 안치하고, 그 관 위에 성경 한 권만을 펴놓은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루었다. 관 위에 펴놓은 성경의 책장들이 간간이 바람에 펄럭이는데 그 주위에서 추기경들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 조문객으로 파견된 각국의 원수들, 왕과 왕비들,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하는 고별의식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안치된 그분의 무덤 역시 고인의 뜻을 받들어 다른 어느 교황들의 무덤과는 달리 평장(平葬)으로 그 주위에 아무런 장식도 없고 꽃이나 화환도 일체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무덤을 참배할 때마다 공간적으로 텅 비어있는 무덤 주위가 그분의 청빈(淸貧)의 부(富)로, 그분의 성덕으로, 그리고 그분의 잔잔한 미소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곤 하였다.
어쩌면 그분의 간소한 장례식과 소박한 무덤은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결산하여 오늘의 교회가 쇄신되어야 할 본 모습을 가장 확실한 언어로 당부하신 것이 아닐까? 가난한 교회의 가난한 봉사자로서의 삶을 지상(至上)의 보람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현대세계의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예언자가 아닐까? 「사제들은 자진하여 가난함을 택하도록 불리웠으며···사제관은 누구라도 쉽게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하며 비록 비천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부끄러움 없이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사제의 직무와 성화에 관한 교령17)는 공의회의 당부는 바로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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