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을 전교에 파견했다는 기사는 두 번 나온다(우가 9,2~3:10,3~4). 그때에는 이리떼 속에 들어가는 양들처럼 파견되면서 생활필수품에 대한 조바심을 버렸지만 뭐하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전교 성과에 큰 만족을 느끼며 돌아왔다(대목 173참조).
주님은 오늘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제자들의 앞날이 걱정이 되셨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길은 제자들의 길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폭력에 대비하여야 할 강인한 정신무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였다. 그래서 훈시를 내리셨다. 「내가 너희를 보낼 때 돈주머니나 식량자루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것이라도 있었느냐?」
제자들은 그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정이 좀 달라질 것이다. 생활필수품 휴대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무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식량자루도 가지고 가라. 또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가지고 가라」.
앞으로 폭력을 받을 때 칼을 무기로 삼아 대항하라는 방위수단을 가르치시는 것이 물론 아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한두 시간 후에 병졸들이 무기를 들고 예수를 잡으러 왔을 때 예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의 귀를 잘랐다. 예수께서는 떨어진 귀를 다시 붙여 주시고 칼을 쓴 사람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말고 말씀하셨다.
오늘 말씀에서 칼을 준비하라는 말씀은 앞으로 당할 모진 박해 속에서 늘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뿐이라는 뜻이다.
성서에서 칼이란 말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뜻으로 쓰인다. 불모, 불화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마태10,34)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묵시1,16:19, 15) 공권력을 상징하는 때도 있고 (로마 13,4) 어머니의 마음 아픔을 표시하기도 한다(우가2,35).
에페소서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상의 박해에 대비하기 위하여 무장할 하느님의 무기를 「성령의 칼」오 표현하였다(에페6,17). 성령의 칼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로 구체적인 표현을 사도교회에서는 사용하였다 (이브4,12: 묵시1, 16:2,16:19, 15).
오늘 말씀의 경우 예수께서 「악인들 중 하나로 몰리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지금 닥쳐오는 무서운 운명을 감당해야 할 어려운 사정을 생각하였고 동시에 같은 운명을 타개해야 할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을 훈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제 몇 시간 후에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악인들 중 하나로」 몰릴 것이고 극악인의 죽음을 당할 운명에 처해지실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성서에 기록된 예언 그대로의 메시아의 길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다.
오늘의 예언인용은 이사야 예언서에서 온 것으로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이사 53,12)라고 한 말씀이 예수자신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제자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과연 나에게 관한 기록은 다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어졌다」라고 하신 최후의 말씀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예수의 죽음의 필요성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그 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주님이 왜 죄도 없이 잡혀가 죽어야 하고 그것도 아무 저항도 없이 당하여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주님이 칼을 준비하라는 말씀에 대뜸 「여기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기가 막혀「됐다. 그만하자」라고 대답하셨다.
여기서 제자들이 평소 왜 칼을 차고 다녔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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