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자세를 모색하고 확인하는 한 방편으로서 우리의 영성신학의 상황을 살펴보고 반성하며 과제를 전망해 보는 것은 뜻있고 유익한 일이라 여겨진다. 우리교회안에서 특히 영성신학의 대상인 「영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혹은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해의 도움을 위해 먼저 세계의 교회안에서 영성신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영성」의 이해와 생활화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간단히 살펴보겠다.
영성과 영성신학
▨영성 신학의 명칭과 정의
「영성신학」이란 용어는 신학사 안에서 영성에 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왔다. 신심생활, 초자연적생활, 내적생활, 영성생활, 그리스도적 완덕신학 등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단순히 영성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영성생활에 관한 체계적 신학을 지칭하기 위하여는 일찍부터 「신비신학」또는 「수덕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며 후엔 「수덕, 신비신학」이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근래에 이 신학 분야를 「영성신학」이란 명칭으로 통일하였다. 「영성」이란 용어가 수덕적 신비적 양 요소를 포함할 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신비안에 사는 그리스도인 삶 전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신학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영성신학은 계시진리와 개인들의 종교체험을 바탕으로 초자연적 생활의 본질을 밝히고 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지침을 규정하며 영성생활의 초기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진보과정을 설명하는 신학의 한 분야이다.
▨영성 신학의 방법과 자료
모든 신학이 사변적 및 실천적 성격을 지니고 있듯이 영성 신학도 두 측면을 관여한다. 하나가 신학적 구조로서 초자연적생명(은총)에 관한 이론이다. 영성신학은 단일한 신학의 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 원칙들을 제공하는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밀접히 연관된다.
다른 한 측면은 그리스도인 각자의 초자연적 생활의 구체적 실존상황이다. 영성신학은 순수 사변신학이 아니고 실천 및 응용신학이기 때문에 경험적인 자료들을 연구해야 한다. 보편적 신학원리가 결국 경험의 사실들에 의해 그 진실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성신학의 방법은 위의 두 측면의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즉 선험적 신학이론과 원리를 따르는 연역적 방법과 구체적 삶안에서 종교체험의 물리적, 심리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서술하는 귀납적 방법을 균형있게 조화시켜야 한다.
영성신학의 자료는 다른 분야의 신학들과 공통적인 것이 있으며 그에 고유한 것이 있다.
모든 신학의 제 일차적인 자료는 성경과 성전이다. 교도권의 가르침인 교회의 문헌들, 전례,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의 자료와 결론들, 영성사, 개인적 신앙체험 그리고 인간에 관한 지식과 그 기술의 적용 등이 영성 신학의 주요자료들이다.
▨영성 신학의 내용: 영성과 영성생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너무 오래 감추어졌던 보물인 「성성에의 보편적 성소」를 천명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삶의 형태나 조건에서든지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그리스도교적 완성 즉 복음적 성성에 불리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수도자의 영성, 사제의 영성과 함께 평신도의 영성이 나란히 설 자리가 마련되었으며 차차 정립되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이 주어진 것이다.
교회의 생활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 순교 → 철저한 복음권고적 생활의 맥을 이어온 수도생활은 매우 일찍부터 실로 오랫동안 그리스도인 전체의 유일한 이상이었으며 생활의 형태에 관계 없이 지배적인 영성이었다. 성소에 따라 수도자와 평신도의 삶을 따로 보지 않고 함께 나란히 비교하면서 우열을 가리고자 했다. 또한 완덕의 견지에서 수도자의 삶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으로 보면서 「영성」이란 용어는 차라리 수도자적 삶과 동일시 되어왔다.
그래서 영성이 아직도 수도자적 완덕의 삶으로 국한 이해되면서 일반 신자들에게는 무관 한 것으로 여겨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 그러한 전통적 수도영성이 다른 신분의 사들 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것으로 곡해되기도 한다. 영성이란 수도자적 완덕의 삶뿐 아니라 삼위일체적 친교안에서 사는 각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포함한다.
즉 성령의 은총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성부께 나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영성 생활은 인간들 사이에 겸손되어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성령의 은총안에서, 따르고 닮아가며 하느님 아버지께 올라가는 여정인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영성은 같은 한 하느님이 근원이시므로 본질적으로 하나일 뿐이지만 한편 여기에 참여하는 방법과 양상은 다양하다. 하느님의 은총과 복음은 시대, 인간의 상황과 여건 그리고 삶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며 또한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성의 다양성이 존재하게 된다.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사는 삶이 강조되는 종말적 성격이 짙은 수도 영성이 교회 역사 안에서 오랫동안 유일한 삶의 이상이 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고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된 현세와 인간의 본성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때론 경시속에서 사실 평신도의 영성이 고려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의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교회의 영성에 육화론적인 면이 긴급히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을 촉구하였다. 이에 새로운 삶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육화적 영성이다.
이 영성은 현세적 사물과 인간의 삶에 대한 긍정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자연이나 인간적 본성능력이 초자연적 질서에 의해 강화되고 거양되어 은총의 힘과 균형있게 합쳐져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세상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면서 성화되도록 하고 일상생활의 모든 환경을 그리스도적으로 변화시키며 모든 사물을 하느님 뜻 안에서 질서 있게 정리하는 노력, 즉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끊임없이 건설하고 확장하는 복음화의 역동성이 강조된다. 또한 동시에 시대적 상황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그 가치들을 그리스도적 가치에 동화시키고 통합시키면서 그리스도교의 가치들을 여러 문화 속에 뿌리 박게 하는 복음의 토착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영성은 이웃 사랑의 실천, 선교, 봉사활동, 사회참여와 정의실현의 추구 등 수평적으로 개방적인 삶을 통해 복음을 표현하려 한다.
공의회 이후 교회의 수평적 개방은 갈라져 나간 형제들과 다른 종교인들, 많은 문화, 학문 및 사상들과 유익한 대화의 장을 열면서 교회 생활에 풍요로운 발전을 이룩하였고 종말적 영성을 근원으로 하는 수도생활에도 시대와 상황에 맞는 쇄신을 촉진하였으며 사제의 영성뿐 아니라 특히 세상안에서 빛 소금, 누룩 역할의 사명을 띤 평신도들의 영성이 확인되고 부각되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의 영성신학과 영성
▨한국의 영성신학
학문으로서 영성신학의 수준은 미약하며 충분히 체계화 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 분야의 연륜이 짧고 전공인도 아직 소수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엔 세계의 모든 신학교에서 그랬듯이 우리 신학교에서도 「수덕 신비 신학」이란 과목이 라틴어로 쓰인 공통교재에 의해 강의되었다.
공의회를 계기로 하여 영성의 개념과 내용이 수정, 보완됨에 따라, 「영성 신학」이라 개칭하였고, 이 강좌는 다양한 주제들을 주로 외국의 관계서적 및 논문들을 참고하면서 소개하고 강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 관련 서적들이 일부 집필 또는 번역 출판되고 있으나 대부분이 서구적, 전통적 수도 영성에 관한 것이거나 토착화에 미흡한 것들이다.
영성신학의 원론뿐 아니라 주제별 연구서적들 특히 토착화 된 영성관계 서적들이 많이 출간돼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각 수도회의 영성 사제의 영성, 평신도의 영성, 세계교회영성사, 한국교회 영성사, 동양 및 한국종교들의 영성, 실정에 맞는 영성지도, 토착화한 다양한 영성수련, 묵상방법 등이 주요주제들이다. 또한 여러 분야의 영성 연구소들이 설립되고 계속적인 연구 결실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근래엔 개신교의 신학대학들에서도 영성신학 강좌를 개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으며 가톨릭의 전통적 영성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영성의 전망
한국교회의 영성은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천되어 왔음을 관찰할 수 있다. 박해시절의 초기 공동체, 믿음의 자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2차 바티칸공의 회의 가르침과 그 영향 그리고 한국교회 2백주년 등이 영성의 주요 변혁기들이었다.
근래 우리 교회는 두 차례의 내적 쇄신과 외적 성장의 호기를 맞으며 영적성숙을 위한 발 돋음을 하였다.
한 차례가 선교 2백주년 기념대회(1984년)였으며 다른 하나는 서울 세계성체대회(1989년)였다. 두 대회는 목적과 동기에 있어 서로 다른 것이었을지라도 우리 땅에서 몇년 사이로 이어 개최되면서 불가분의 연속성을 지닌 채 우리 교회의 전반적 측면에 반성을 촉구하였고 희망적 전망의 새 지평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선조들의 영성과 사도직의 영성을 뒤돌아 보면서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하도록 하였다.
선교 2백주년 사목회의에서 다룬 의안의 주제들은 모두 끊임없는 우리 교회의 쇄신과 발전의 대상이며 또한 영성신학의 연구대상이다. 그중 특히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전례, 신심운동, 선교의안 그리고 사목에 관련된 의안들이 제시한 문제점과 전망은 한국교회의 쇄신과 토착화의 영성에 직관된다.
▲무엇보다 먼저 숙고 해야 할 일은 교회생활의 본질인 친교의 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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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당의 대형화는 사목자와 신자들 그리고 신자들 상호간의 인격적 관계와 친교를 어렵게 한다. 또한 신자들의 영성생활과 사도직이 지나치게 본당 중심적이고 사제 중심적이며 내향적이다.
사제 중심에서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를 이루는 평신도 중심으로, 지나친 본당 중심에서 좀 더 사회 지향적으로, 대형공동체에서 소공동체적 친교의 모습으로 빨리 전향되며 쇄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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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평신도의 신원과 사명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유한 영성에 대한 연구와 획기적 교육여건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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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조들이 평신도로서 보여준 사도적 창의성과 깊은 영성은 우리뿐 아니라 온 세계교회의 귀감이다. 그분들은 복음의 선포와 증거뿐 아니라 교리 및 영성의 토착화 에 있어 놀라운 모범을 보였다.
기해박해 (1839) 이후, 유능한 초기 평신도들이 순교했고 교계제도가 확립되면서 우리교회의 신자들은 성직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타율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
성숙된 신자의 모습을 지닌 선조들과 달리 미숙한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2백주년과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평신도들은 다시 대단한 잠재력과 가능상을 실증하였다.
교회는 성령의 표지를 식별하여 그들의 카리스마와 사명, 영적요구, 창의력을 존중하고 계발토록해야 할 것이며 또한 그들중 많은 신학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과감히 여건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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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상황에 맞는 사제의 영성이 교회쇄신의 주요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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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서 미래의 사제들이 종전과 다르게 교육되고 양성되어야한다.
특히 신학교 전체 기간의 영성생활교육 커리큘럼이 쇄신되고 체계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또한 사목자들에게 지속적 쇄신교육이 요청된다.
목자적 보살핌과 봉사적 섬김보다 행정가 내지 관리자로 전락하기 쉬운 오늘의 상황에서 「기도와 전교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하여 여러 관리 업무를 맡길 보조자들을 뽑았다는 사실(사도 6, 1~7 참조)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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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들은 보편적 영성뿐 아니고 카리스마에 따른 사도직과 그 고유한 영성을 계속 계발하고 심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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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들 뿐 아니라 사제, 평신도들을 위한 영성 생활 지침, 피정, 관상법 등의 연구개발 및 적용의 봉사는 특히 그 방면이 빈약한 한국사회 안에서 수행해야 할 수도회들의 주요 몫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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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토착화 연구 및 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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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의 표현인 동시에 그 생활을 성숙하게 하고 심화 시키는 방법인 전례의 토착화, 교회 영성운동, 피정 및 영성수련, 성체조배, 묵상법 등의 토착화가 요청된다.
주로 서구의 문화안에서 형성된 영성 생활의 방편들이 우리의 종교심성, 사고방식, 정감, 행동양식 언어구조 등의 고유한 토양위에서 뿌리내리고 새로운 결실을 맺도록 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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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회는 공동체와 세계의 유익을 위해 식별력을 키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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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급변하고 있으며 가치의 혼돈속에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요청되는 은총이며 능력이다.
또한 교회안에서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는 종말사상, 성모 발현, 사적계시 등에 대해 교회는 체계적이며 신중한 식별력을 행사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의 영성은 언제나 더욱 사회지향적이어야 하고 개방적 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과 생활을 분리시키는 이 영성은 「세상 안에서의 영성생활」을 어렵게 한다. 신앙의 생활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가정과 직장의 복음화, 생명존중과 인권보호,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과 협조, 창조질서의 보존과 회복운동, 북한선교를 위한 능동적 대비 등은 우리 한국교회의 당면 문제이며 긴급히 실천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또한 전망을 제시해야 할 영성 시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세계를 복음화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교회와 우리 자신들이 성화되는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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