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철학」이라는 책은 1백여쪽분량의 소책자이다. 필자는 분량 때문에 이 책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금 읽었을 때 숨이 막혀 더 읽어 내려가지 못하고 한참동안 숨을 돌리고 난 뒤에 다시 읽어갔다.
이 책의 저자인 정달용 신부님에게는 전(前)학장, 교수, 도서관장 등의 칭호가 모두 합당하지만 그 중에서도 교수가 아무래도 잘 어울리는것같다. 그분은 모르는 것이 없어서 학자, 저서, 연대, 에피소드 등 참으로 여러 분야에 관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서양 고대에서부터 동양 현대 사상에 이르기까지 철학, 신학, 사상, 문화, 문학, 역사 등 모든 분야에 대해서 그분은 통달해 있다. 언젠가 필자는 어떻게 하여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지 물어보았더니, 『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그분은 대답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판된 책을 읽고 그 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 소책자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핵심을 깊숙히 찌르고 있다. 한장(章)이 끝나면 거기에 관련된 참고문헌을 열거하여 두었는데 그 수가 총 1백여권에 달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펠트너(Poltner)와 같은 그의 학우는 지금 비엔나 대학교의 쟁쟁한 현역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수도교 철학」은 시종 알기 쉬운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것은 저자가 그 많은 참고서적을 모두 소화하고 자기류(自己流)의 스타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 그것은 도대체 왜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아름답지 못한 것, 그것은 도대체 왜 아름답지 못한 것인가? 무엇을 근거로 해서 무엇을 토대로 해서 그리고 무엇을 척도로 해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그렇게 판단하고 그리고 또한 그렇게 말하는가? 질문을 거듭하다가 생각을 거듭하다가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디엔가 「아름다운 것」그 자체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얻어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은 그들이 「아름다운 것」자체에 한 몫(participatio)을 차지함에 틀림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진리를 설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논리로 진리에 접근해 가고 있다. 그는 성직자로서 온 몸으로 진리에 육박하고 있어 읽는 사람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책은 독자가 진리를 이해하고 환희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받아낸다」「따낸다」등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는 것이 저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 독일어의전철(前綴)을 정확히 구별해서 사용하는 습관에서 오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우리 말에 대한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관용적 사용법에 경종이 될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까지가 중세철학의 본고장이기는 하지만, 근세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철학계에서 중세 철학의 위상을 스케치하는 속편이 나오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철학책이라면 난해하거나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는 예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이와 같은 저자의 쉽고도 심오한 저서가 나온 것에 대하여 기쁘게 생각하며, 이 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귀감아 되는데 기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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