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길고 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깨진 기왓장 하나도 무시해서는 안되며 의식의 안테나를 세우고 선조들이 보내오는 역사의 전언들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이를 명백하게 해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눈물 통해 바라봄으로써만 살아난다. 최인호(베드로ㆍ50)씨의 「잃어버린 왕국」(1986)이 왕국 「백제」의 이야기라면 이번에 펴낸 「왕도의 비밀」(샘터 발행)은 한민족 최대 중흥기였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광을 다루고 있다.
「왕도의 비밀」은 지난 91년부터 2년6개월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소설로 최씨는 국내와 중국답사를 통해 계속 수정을 거듭했다. 최씨는 연재 당시 백제의 무령대왕을 둘러 싼 한일고대사의 비밀을 추적하려 했으나 개작과정에서 무대는 고구려로 옮겨졌고 이번에 전3권으로 출간하면서 2백자 원고지 1천5백매 분량을 새로 넣었다.
『고구려유적이나 옛 왕도를 답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연재당시 리얼리티를 살릴 수가 없었다』는 최씨가 답사를 위해 발로 뛴 거리는 국내답사 1만km를 제외하고도 무려 3만km로 추산된다. 지구를 한바퀴 돌말한 거리이다.
다큐멘터리식이었던 「잃어버린 왕국」과는 또 다르게 「왕도의 비밀」은 과거의 현재라는 두 축이 서로 교차하면서 풀려나간다.
소설속의 「나」가 우연히 고구려의 토기에 새겨진 의혹의 부호 「#」문양을 발견하고 역사안에서 갖는 의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저자이면서 소설속의 화자(話者)인 「나」는 마침내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경로와 이 문양이 발견되 유적지가 일치함을 발견하고 따라서 문양은 정복왕으로서의 광개토대왕의 표지이자 「물의 손자이며 해의 아들」인 한민족의 상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작가는 나아가 #문양의 기원이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한민족의 발원지인 천지를 상징하고 있다는 확신에 도달함으로써 「나」의 역사 탐험은 막을 내린다.
「왕도의 비밀」의 역사적 과거공간인 또 하나의 축은 광개토대왕에서 장수왕으로 이어지는 고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다. 여기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들은 여러 차례 인용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매체가 된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작중 인물을 통해 『눈을 떠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 선언은 바로 작가 자신이며 또한 우리 각자이기도 한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올해는 광복 50주년. 어느덧 광복 반세기를 맞은 이때 해방된 해에 태어난 해방둥이인 나로서는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의 영광을 기리는 이 소설이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케 하는 작은 초석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감히 백제와 고구려에 관한 소설을 씀으로써 위대한 선인(先人)이었던 조상들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빚을 어느정도 갚았다고 생각한다』
지난 87년 영세, 늦깍이 신앙생활에 깊은 맛을 들이고 있는 저자는 한국일보에 「사랑의 기쁨」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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