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에게 해상(海上)의 코스(Cos)섬에서 태어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건강과 질병을 자연의 현상과 연결시켜 과학적으로 탐구, 의술과 주술(呪術)을 분리시킨 최초의 의학자이다. 그의 전집(Corpus Hippocrates) 중에는 오늘날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불후의 의도(醫道), 의료윤리가 담겨있다. 『… 환자가 요청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약은 주지 않겠으며, 유산시키는 도구를 주지 않으며, 남녀 자유인과 노예를 차별 하지 않으며, 타인의 비밀을 지키겠으며, 순수하고 성스럽게 나의 인생과 의술을 지킬 것이며…』
그 후 로마제국 시대의 의사 갈레노스(Galleons A.D120~200)는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생물학을 기초로 자신의 해부학, 생리학을 덧붙여 의학을 체계화하였는데 유명한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lius)의 시의(侍醫)답게 스스로 의학과 철학을 연결시켜 훌륭한 의사는 동시에 훌륭한 철학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처럼 의료직, 즉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분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철학적, 인간학적 차원에서의 반성이 필요함은 이미 고대로 부터 드러나고 있다. 의학은 의료인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소중한 학문이다. 그것은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계층의 인격들에게 가장 성스럽게 지켜져야 하는 인간존재 그 자체의 실재이다. 따라서 인간존재의 궁극적 문제에 관심을 두는 철학과 의학은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하나인 것이다.
현대의 어느 저자는 의료와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의학기술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서 어떻게 그가 가진 병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인가?』병은 인간이 가지고 있고 의학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므로 병과 인간을 분리하여 병만 다스리는 의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학에는 언제나 대전제가 요청되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의과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의학도들이 가장 올바른 인간관을 갖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의학도들로 하여금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는 인간 만들기 작업이 바로 의대 윤리교육의 목표이다. 즉 인간에 대한 기본정신, 인격성장의 본질적인 비전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항상 의학적 사례, 증례 (case)에 관심을 쏟는 의학의 특성상 의학윤리과목에서도 의사들과 학생들은 의학실험 및 임상에서 윤리적 문제에 부딪칠 경우 아플 때 특효약 주듯 윤리적으로 면책(免責)될 구실들을 우선적으로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듯하다. 우리의 윤리학은 인격과 동떨어진 행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 행위가 뿌리박고 있는 인격,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한국의 모든 의학도들이여! 제발 얼마나 많이 가진, 많이 아는, 얼마나 높은 의사가 되느냐 보다 어떤 인간형의 의사가 될 것인 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시라! 생명을 다루는 그대들의 직분이 너무 성스럽기 때문이다. )
경험과학은 인간의 본질을 다 그려내지 못하며 인격의 모든 면모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연과학, 의학 생물학 등 여러 종류의 생명과학들은 인간의 모든 면모에 개입하고 인간생명의 시작과 성장에 각종조작 (操作, manipulation)을 가하여 그를 변용(變容)시키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영, 육의 분리 될 수 없는 합일체인 인간을 총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하는 생명과학이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할 경우 필연적으로 철학 미지 신학과 조우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애써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생명윤리는 바로 이러한 생명현상을 다루는 학문들과 철학의 만남에서 시작되고 성장하였다. 병든 인간의 치료하는 의학의 전통적인 역할만 인정되었던 시대에는 의학윤리(Medical Ethics, Etica Medica)라는 이름으로 취급되던 윤리문제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의료와 관련된 윤리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의학적 행위자체가 비교적 단순하였기 때문에 전문적인 윤리학적 지식이 필요할 만큼의 윤리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제네바 선언, 헬싱키 선언 등의 윤리헌장(Ethical Code)들로 해결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