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짐승들이 기계적인 존재, 고착된 존재, 본능에 묶인 정체된 존재이며 따라서 발전과는 무관한 존재임에 반해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 발전, 자아성취(self-achievement), 자아충족(self-fullfilment)을 이룰 수 있는 역동적인 존재라는 점에 있다. 물론 그 자아실현의 내용이 무엇으로 구성되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각자의 인간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물학적 본성(natura biologica)은 그의 자유와 지적 능력에 맡겨져 있는 부분이 크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역사중에 이미 자기 고유의 유전적 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존재이다. 즉 그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자신이 취하고 있는 행동형태, 그가 만들거나 처해진 환경(Umwelt)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유전적 역사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으로 고착되고 정체되어 있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지성적으로 자발적 발전 또는 퇴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 변화는 자신의 유전적 소질뿐 아니라 심리적, 문화적 환경, 인간관계, 정치, 경제, 종교 등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유전적 영향을 포함한 모든 영향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육체적, 정신적 무질서와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오는 잘못된 유전적 정보를 치유할 수도 있는 지성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유전자 조작은 인간에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중대한 조건들이 있다. 즉 거기에 요구되는 필수적인 지식, 기술 및 윤리적 기준이 완비되어야 한다. 그 작업은 인간존재의 면모들을 변화시키려는 중대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간(homonuvus)을 만들려는 위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자신의 질(quality)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시도들은 이미 역사상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완벽한 인내천(人乃天)의 윤리적 효과만 바라본 유전학의 죄악이었다. 1920년대, 유전학 초기의 학자들은 사람의 유전적 요소들이 지는, 신체적 조건, 성격, 사회성 등과 크게 관계가 있음을 알았고 그러한 어줍잖은 과학은 인간, 인종의 우열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정치권력과 결탁, 죄스런 우생학으로 변질되어 나찌즘(Nazism)의 불임정책, 안락사정책, 유태인 학살의 과학적 빌미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기 연구의 긍정적인 부면만 선전한다. 질병을 퇴치하고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참으로 인류를 위하는 일인지 깊이 있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체계적이고도 학문적인 윤리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철학을 모르고 신학과 담을 쌓은 자연과학자의 사고 수준은 유치하기 짝이 없음을 체험하고 있다. 자신의 연구가 초월지향의 인간이 지닌 궁극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 현세주의적 목적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것이다?
오늘날 많은 유전학자들이 소위 인간 게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에 매달리고 있다. 세포의 46개 염색체 한 틀 (게놈)에 담긴 비밀을 모조리 파헤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명의 신비를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겠단다. 어느 유전공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생명과학을 하면 할수록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기는 켜녕 생명이 신비롭다는 사실만 더 크게 확인할 뿐이라고 유전학이 더욱 발전하여 암이다 에이즈다 하는 불치병 뿐아니라 수많은 유전적 질환의 원인이 규명되고 치료법이 발견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러한 유전학적인 성과가 또다시 우생학적 범죄에 이용될까 겁난다.
최근 국제의회연맹(IPU)은 마드리드 회의에서 법이 정한예외를 제외하고 인간 유전자를 특허 화하고 인체 또는 장기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를 배격하자는 생명윤리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한다. 학문으로서의 생명윤리의 필요성이 이번에는 정치인들에 의해 천명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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