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ㆍ15 해방이후 나타난 한국의 사회변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의 하나는 급속한 도시화 현상이다. 조국의 광복에 따른 해외동포들의 귀환과 6ㆍ25 전쟁을 전후한 북한 주민의 대량 월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 주도아래 이루어진 도시중심의 공업화 정책과 그로 인한 농촌 경제의 파탄은 도시의 양적 비대화와 농촌의 상대적 피폐화를 가져왔다. 해방 당시 12ㆍ1%에 불과하던 도시지역 거주인구의 비율은 1995년 말에는 무려 77ㆍ7%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도시화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냈다. 그 첫째는 도시화의 속도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급속히 이루어진 과잉도시화 (over-urbanization) 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파행적인 도시화 현상은 이 농자들을 수용할 물리적 문화적 시설의 미비로 인해 도시문제들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이 농자들의 대부분을 행상이나 일당노동자 또는 영세서비스업과 같은 도시 비공식부문에 종사케 함으로써 도시고용구조상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둘째는 도시화가 서울을 중심으로한 수도권지역과 일부 대도시에 집중되는 종주화(宗主化)경향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해방당시 90만명에 불과하던 서울시 인구는 1992년 말 현재1천97만 명으로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종주화 현상은 지역개발의 불균형을 수반케 하여 대도시와 중소도시 그리고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사회학자들은 도시화의 개념을 두가지 측면에서 정의한다. 그 하나는 인적 물적 자원과 자본이 도시지역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경쟁주의 등과 같은 도시성(urbanism)의 증대현상을 지칭한다. 도시화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바로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 성장의 기반
우선 도시화는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간주 된다. 한국교회가 놀랄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교회의 적극적인 선교활동과 사회참여라는 교회 내적인 요인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대상으로서의 한국사회가 나타내고 있었던 구조적 성격 또한 적지 않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교회 외적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급속한 도시화 현상 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도시화는 적어도 몇가지 측면에서 교회성장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지연(地緣)공동체와 혈연(血緣)공동체의 약화는 잃어버린 소속감과 연대감을 회복시키기 위한 새로운 일차집단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이때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는 심리적인 안정과 귀속의식을 회복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대상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도시생활에서 갖게 되는 익명성과 비인격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평가를 인격이나 도덕성 보다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의 정도나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도시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인간의 삶이나 존재의미 그리고 경쟁적인 도시생활에서 갖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을 설명해 줄보다 궁극적인 의미체계를 요구토록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개인의 정체성(正體性)을 회복시키는 한편,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서는 그 의미와 보상을 제시해 주는 효율적인 신념 체계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종교들이 해방이후 대도시 지역에서 급성장 하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신앙공동체의 격차
이러한 요인들이 한국교회 성장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농촌교회보다는 도시교회의 성장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도시화현상은 그 자체가 농촌신자들의 도시유입을 촉진시킴으로써 도시교회의 급속한 양적 성장에는 유리하게 작용하였지만, 농촌교회의 성장에는 별로 큰 보탬이 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도시화는 농촌교회를 도시교회에 대한 신자공급처로 변모토록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농촌교회의 피폐화를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공동체의 지역간격차는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 지역과 일부 대도시 지역에서의 신앙공동체의 거대화 현상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예를 들면, 1993년 말 현재 신자의 수효가 1만명이 넘는 초대형 본당은 서울대교구 13개소, 수원교구 5개소, 부산교구 2개소, 대구 대교구 1개소 등 모두 21개소에 이르고 있으며, 7천명이 넘는 대형본당의 수효도 서울대교구 44개소, 수원교구 14개소, 인천교구 7개소, 대구대교구 4개소, 부산교구 3개소 등 무려 72개소나 되고 있다.
물론, 본당 공동체의 거대화가 단지 도시화현상 때문이었다고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거기에는 본당의 신설을 위한 부지의 매입을 비롯한 행정적인 절차문제와 성직자의 수급이라는 교구 자체의 제반 문제들이 개입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 역시 근본적으로는 급속한 도시화현상에 파생되어진 부수적인 것들이라는 점에서 도시본당의 거대화는 한국사회의 도시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도권 지역을 비롯한 일부 도시본당의 거대화 현상은 일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내에서도 도시와 농촌간의 심한 격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예를 들면, 1993년말 현재 서울대교구의 신자수효는 1백만명을 넘어 한국교회 전체 신자 수효의 33.6%를 차지하고 있으며, 명동본당의 신자수효는 거의 4만 명에 이르러 제주교구나 안동교구의 전체 신자수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반면, 한국교회의 모태이며 작은 현장교회로, 또한 신앙의 기초공동체로 기능해왔던 공소(公所)는 1968년에 1천9백여개소에 이르던 것이 25년이 지난 1993년에는 1천4백여개소로 약 5백개소나 감소된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본당의 거대화는 단지 신자의 도시집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내의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의 도시집적(都市集積)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본당이 급속히 거대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본당과 농촌본당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한국교회내에서도 지역간의 불균형이 일반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동체의 성격변화
인적 물적 자원의 도시집적 현상은 도시에서의 신앙공동체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시화현상은 우선 도시 신앙공동체의 거대화를 수반하였다. 이것은 본당 공동체의 신자규모가 거대화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교회의 건물과 조직, 기구, 그리고 각종 행사들이 대형화됐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한국교회가 1980년대에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기념행사와 교회창설 2백주년 행사, 그리고 제44차 세계성체대회와 같은 대규모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도시 본당들의 인적 물적 자원으로부터 힘입은 바 컸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구나 본당의 거대화는 그 자체가 교회 행정과 운영의 조직화 및 관료제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만 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다. 조직화되고 관료제화된 사회에서 소외를 체험한 자들이 삶의 의미와 구원을 얻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물리적시설이 매머드화되고 조직이나 행정이 일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료제화되었다면 그곳에서 진정한 위로와 평화를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신앙공동체의 거대화는 사목자와 신자간, 그리고 신자들 상호간의 일차적 관계의 형성과 공동체 의식의 강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교구나 본당의 거대화는 신앙공동체 내에서도 도시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양적성장이 곧 교회의 성장으로 간주됨에 따라 나타나는 경쟁의적인 선교활동과 물질주의 업적주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의 팽배, 교회 단체 내에서의 지위 부여나 권력 배분이 신앙의 정도나 경력, 또는 도덕성에 의해서보다는 물질이나 사회적 권력의 소유 정도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 등은 비록 교회의 성장과 안정을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하도라도, 신앙공동체마저 사회의 이익집단처럼 변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화 현상은 신앙의 도구화 경향을 촉발시킬 가능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시사회가 나타내는 많은 문제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장소로 인식토록 만들고, 그 결과 신앙은 개인의 현세적 목적이나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의 욕구 충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자신의 욕구를 보다 더 잘 충족시켜 줄 대상이 있다면 신앙은 쉽게 포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에 못지 않게 냉담자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공동체의 거대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빈곤층ㆍ이향신자문제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교회 구성원들의 계층구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러 기관에서 실시했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교회는 점차 중산층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톨릭신자들의 교육 수준과 자가(自家)보급률 그리고 전문직, 관리직, 기술 및 사무직 종사자들의 비율은 한국인의 평균보다 훨씬 높으며, 소득수준 또한 한국인의 그것보다 대단히 높은 것으로 밝혀진다.
도시 교회의 거대화와 관료제화 그리고 중산층화 현상은 도시빈민은 물론 도시로 이농한 이향 신자들의 도시 교회에서의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능률과 지배의 원리가 작용하는 조직생활에 대한 적응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빈곤계층이나, 농촌본당 또는 공소에서 오랫동안 인격적 포괄적 관계를 맺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향신자들에게는 도시 본당의 매머드화된 인적 물적 규모와 관료적인 행정체계, 그리고 중산층 중심의 이해 결속에 따른 인간관계는 대단히 이질적인 것으로 체험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농자들의 대다수가 도농(都農)간의 격차로 인해 농촌으로부터 「위기적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로서 처음에는 도시의 주거불량지역에서 행상이나 단순 육체 노동등과 같은 비공식 부문에 취업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가능성은 대단히 높은 것이다. 빈곤 계층이나 이향신자들에게서 신앙생활 중단자 내지는 행방불명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망과 대책
대다수의 학자들은 한국사회의 변동방향과 정부의 현 정책 방안에 비추어 한국의 도시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도시화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시교회의 구조나 기능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시화의 성격과 거의 동일하게 맞물려 나간다면, 도시화는 오히려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농촌교회의 공동화(空洞化)는 보다 가속화될 것이고, 도시교회는 일차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교회의 양적성장은 물론 질적 성장 또한 저지될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도시화가 가져올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한 대책방안은 교회가 적어도 사회의 이익집단과는 구분될 수 있는 전인적이며 포괄적이며 대면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은 대형교회의 지양과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서 보다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으려는 진지한 노력, 즉 신앙공동체의 본연의 기능인 섬김과 사귐과 나눔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할 때 도시화과정에서도 한국교회의 역동성과 생명력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며, 복음화라는 교회의 사명도 그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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