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명윤리는 이렇게 과거 생명에 대한 의학적 개입의 윤리적 반성을 기원으로 하여, 생명과 관련된 현대과학의 비약적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성장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과학, 의학의 분야에서 일어난 기술상의 진보는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급격히 증가시키게 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그러한 능력들의 현실화로 인한 윤리적 문제에 스스로 봉착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삶과 죽음의 의미 자체에 이르기까지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술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객관적 실재일 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질(quality)의 변화, 인간 기원의 기술적 조작 및 그의 정신과 사고의 변화까지 가져오는 주체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근본문제, 즉 생과 사의문제, 창조질서의 문제에까지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이 혼란은 특히 유전공학적인 조작, 산과학(産科學)의 기술적 발전, 지속적인 생명연장 기술 등을 통하여 대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인간의 생명문제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다루는 모든 과학자들, 정책결정자들에게 가장 심각히 요청되는 것은 자신들의 직무를 가장 강력하고도 완벽한 윤리적 태도 위에서 수행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생명과학 종사자들과 의료인들,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 입법가들은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 앞에서 객관적 윤리규범과 보편적 윤리원칙에 근거한 판단과 행위를 결단할 윤리지식(moral knowledge)을 갖추지 못하여 스스로 주관적 가치평가와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인간생명에 대한 윤리도덕적 각성은 생명과학과 의학의 기술발전에 그 일차적 동인을 발견할 수 있으나 정치, 사회적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의료윤리를 전문적으로 다룬 저술이나 잡지가 가톨릭교회 외에는 거의 전무했고, 어느 의과대학에서도 의학윤리를 정규교과목으로 설치한 곳이 없을 정도였던 1970년대 초, 의학윤리에 대한 관심이 미국에서 부터 갑자기 고조되기 시작했던 것은 역시 인간과 인권에 대한 정치-사회적 관심의 증대가 그 원인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일기 시작한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여성과 노인,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각성, 군비축소운동, 환경보호운동 등은 모두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인권운동, 인간성보호운동이었다.
당시 미국의회를 통고한 노인의료보험(medicare)과 의료보호제도(medicaid)를 중심으로 한 의료의 사회화문제에서부터 과잉진료 문제, 의사-환자와의 관계 등에 따르는 수많은 윤리문제에 이르기까지 의료와 관련된 윤리도 중요한 윤리학의 연구분야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서 보건 의료기관들이 보여주고 있는 비윤리적인 모습들,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대인들의 삶 자체의 의료화 등은 더욱더 의료의 윤리적 반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삶의 의료화는 곧 의학의 사회화를 가져왔고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의료인, 행정가, 정치가들의 개입이 뒤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생명의 시초, 생명의 유지 및 종말과 관련되는 실정법적 규범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법은 또한 강한 윤리적 반성과 기반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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