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교회가 하나의 종교로서 출발하는 데에는 몇가지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희랍의 발달된 거센 문화였으며, 둘째는 로마라는 강력한 이방인 세력이었고, 셋째는 율법을 고집하는 유다이즘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사도15,1~2:22~29)에서는 율법을 고집하는 유다교계통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구원이 율법에서 오느냐? 아니면 믿음에서 오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회의를 소집했고 거기서 결정한 사항은 새롭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이들에겐 율법의 멍에를 더이상 지우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한 매듭이 정립이되며 말썽이 많던 요지를 해결해 버립니다. 구원이 율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 결정을 하면서「성령의 결정」이라고 선언 합니다. 바로의 이것이 오늘의 공의회며 사도들의 후계인 주교들의 결정은「성령의 결정」으로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제2독서(룩시21,10~14, 22~23)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도성을 보여줍니다. 그 도성에는 아름다운 치장이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성전은 아버지 하느님과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다라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천상의 성전은 아버지 하느님과 그의 아들예수님이십니다. 이 분을 영접하면 성전에 들어간 것이며 이 분을 믿으면 성전을 이미 찾은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받아 들이면 이미 성전은 우리 안에 건설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율법으로만 구원될 수 없듯이 우리도 세례만 받았다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례에 의해서 하느님의 나라는 활짝 개방이 되었지만, 우리가 직접 올라가지 않으면 그분의 나라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층계도 없고 사다리도 없는데 어떻게 올라가느냐?
그것은「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는 제일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천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계명을 잘 지킬 것이며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것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인생과, 사랑하는 가정안에는 아버지와 예수님이 찾아가시어 거기에 머무십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이 거기 머무시면 평화는 저절로 피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주님이 거기 계시면 천국의 평화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먹고 잘 산다 해도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평화는 없게 됩니다.
저도 성격적으로 화를 자주 냅니다. 급한 성질 때문에 제자신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럴때마다 느끼는 것은, 제가 사랑을 거스리면 바로 그 순간 부터 마음은 지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를 떠나시기 때문에 평화는 깨지고 썩은 오물만이 저를 괴롭힐 뿐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 고집에 있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어떤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시어머니의 심성이 고약한 면도 있었지만 그러나 며느리의 근본적인 자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믿는 집에서 평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기 때문에 가정이 지옥이요 사는게 원수 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며느리가 시장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를 만나 중태에 빠집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빠른 수혈을 해줘서 며느리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사랑에 큰 감명을 받았고 시어머니 또한 며느리의 아픔을 통해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평화를 만날 수 없으며 사랑하지 않고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만나는 최고의 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합시다. 이것이 주님의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것이 또 평화를 얻는 최고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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