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의 말씀은 제자들 (신자 공동체)과 그리스도의 일치를 중심논제로 하면서 오늘 대목에서는 이 일치를 포도나무와 포도가지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이 말씀은 제자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한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가지들에게 생명력을 공급하는 모체이다라는 뜻으로 『나는 포도나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참 포도나무」라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참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은 가짜 포도나무를 전제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선은 「참 생명체」라는 뜻을 강조한다. 참생명체라는 것은 요한신학에서는 『위로부터의 생명을 말하며 아래로부터의 생명과 대조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꼭 붙어서 살아야 할 참 포도나무는 아버지께서 주관하시는 생명체이다』라는 뜻이다.『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요한 6,32)라고 말씀하신 것과 똑 같은 뜻이다.「참 포도나무」는 이차적으로 가짜 포도나무와 대조되기도 한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과 먹고도 죽는 만나빵,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신자들과 예수를 배척하는 유대아인들, 예수를 머리로 모시는 새 예루살렘 즉 그리스도교 공동체와의 대조를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다. 예레미야서는 이미 이렇게 예언하였다. 「나는 열매맺는 진종 포도나무를 골라 심었는데 너 어찌 쓸모 없는 야생잡종으로 변하였느냐?」(2,21: 참조 이사 5,1~7: 에제15장: 시편 80, 9~16).
포도나무는 줄기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고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맺는다. 그러니 가지의 사명은 열매를 맺는데 있다. 포도나무를 가꾸는 농부는 열매를 많이 맺도록 2,3월에 쓸모없는 가지를 쳐낸다. 8월이 되면 농부는 두번째 손질을 하면서 돋아난 새 싹들을 살피고 싹수가 노란 것은 따버린다. 그러면 싹수가 좋은 가지들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좋은 가지와 나쁜 가지는 삶과 죽음의 운명을 맞게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고「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신학에서 싹수가 좋은 가지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와 일치되어 있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그래서「너희는 나를 떠나지 말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고「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라고 되풀이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 나무라는 생명체이고 그를 믿는 신자들이 그 생명체에 붙어있는 가지라는 교훈은 사도 바오로의 그리스도 신비체 사상과 이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하나이며」(갈라3,28)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루어 … 각각 지체가 됩니다」(고린전 12,12~17.27: 로마 12,4 이하: 에페4,25). 따라서 본체에서 잘려 나간 지체가 죽고 말듯이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아무 쓸모가 없으며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진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성서에 패역하는 이스라엘을 두고 예언 되어있고, 예수를 떠나 배반의 길을 걷는 유다스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가(假)그리스도를(1요한 2,18~19) 지칭한다. 예수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분의 말씀안에 머무는 것이며 그 말씀안에 머무는 것은 그분의 사랑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 사랑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사랑이며 그 아들이 사랑하는 사랑이다. 제자들은 오직 서로 사랑함으로써 주님의 말씀안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참된 제자가 됨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니 주님을 떠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다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많은 열매 맺음이며 많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는 아버지의 영광이 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때에는 십자가의 비극을 눈앞에 보면서도 바로 그일이 하느님 아버지의 구세계획을 완수하는 계기가 되어 당신과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생명력 완성한 포도나무를 내다보며 기쁨이 넘쳐 있었다. 이 기쁨은 사랑하는데서 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벗이라고 부른다. 벗과 벗은 서로 사랑하는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벗을 사랑하면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 플라톤은 저서「향연」에서「사랑하는 자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다」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신자들의 사랑은 남을 이하여 자기를 희생하는데 있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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