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은 베트남의 독립기념일이었다. 1975년 거대한 공룡, 미국을 이기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해 낸지 꼭 20주년이 되는 4월의 마지막 날, 작지만 매운 고추 베트남은 승리의 기쁨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3일간 이어진 특별휴가는 베트남의 독립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있어 얼마나 의미 있는 날인가를 가늠케 해주었다.
폭죽이 터지고 축하행렬이 밤늦도록 이어진 4월 30일의 호치민 거리, 그 한복판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질주하는 오토바이 행렬을 구경하는 것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아니, 3년 전 호치민시는 이렇지 않았는데.... 당시 자전거 물결을 헤쳐 나가느라 진땀을 흘리던 운전기사 아저씨는 이제 무조건 달려드는 오토바이 부대를 피하느라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베트남의 오토바이는 변화하는 베트남의 뚜렷한 상징이다. 일제 혼다 오토바이는 베트남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족을 못 쓰는 베트남 최대의 인기품목에 속한다. 한대에 적게는 수천달러에서 많게는 1만 달러를 호가하는 혼다 오토바이. 월 평균 35~40달러를 넘지 못하는 이들의 급여수준으로는 평생 꿈으로만 간직되어 있어야 할 혼다는 어느새 이들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민 절대다수가 절대 빈곤 속을 헤매고 있고 삶의 질 보다는 생존 그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은 경제구조 속에서 길마다 물결을 이루는 오토바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의 직장, 직업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엄연한 현실 속에서 무엇으로 이들은 고가의 오토바이를 장만할 수가 있었을까.
상식선에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 현상은 자유경제 체제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이원적 경제구조 속에서 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미 거대한 시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의 지하경제, 수년간의 개방이 가져온 뚜렷한 결과 중 지하경제의 활성화는 베트남의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국민 대다수가 2개 아니 3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수가 있는 오늘이 베트남에선 달러가 가장 소중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무려 3일 동안이나 독립휴가를 즐기는 베트남, 호치민시민에게 해방의 기쁨을 물어보았다. 외세를 물리치고 독립과 해방을 이루어낸 자랑 뒤에 반드시 뒤따라 나오는 역질문은 한결 같았다. 「당신은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얼마나 받고 있는가」그들의 관심은 「미국처럼 잘 사는」, 「한국처럼 돈 잘 버는」방법과 길에 많이 쏠려있는 듯 했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 같은 변화를 우려하는 기자에게 통역과 공안원을 겸한 안내인은 대학 즉 학력을 선호하던 해방 전과는 달리 이제는 돈 잘 버는 일이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그 역시 하루 안내 통역비로 1백 달러에 가까운 사례를 받고 있는 고소득자로 현재 베트남에서 최고 인기의 직업인이었다. 김일성대학을 7년간이나 다닌바 있는 그는 현재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통역관 운전기사 관광안내인 개인사업가 등 이라고 일러주었다.
불과 몇 년 만에 즐비하게 늘어선 백화점과 상점들, 하늘거리는 아오자이 차림으로 1천cc 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지만 아직 베트남에선 밝은 미소를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자동차 오토바이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 베트남 사람들의 다리가 되고 있는 자전거위에서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29일, 우리가 탄 자동차에 살짝 부딪쳐 넘어진 한 젊은 여성은 웃으며 일어났다. 툭툭 털고 일어나 부끄러운 미소를 보이면 사라진 그녀의 얼굴, 순간 베트남은 변하더라도 그 웃음만은 영원히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